[일꾼의 자기계발]
인체의 신비 |
내 안의? 뇌안의? 적절한 균형 뇌를 디자인해보자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해서 뇌세포는 줄어든다던지, 꿀밤을 맞으면 뇌세포가 죽는다던지, 유년기에 측정한 IQ가 성년까지 변함이 없다는 웃지 못할 속설이 의외로 상식처럼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면 지레 건망증을 걱정하고,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배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시는지? 식생활과 육체의 웰빙well-being을 이야기하는데, 혹시 뇌도 웰빙하게 가꿀 순 없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머릿속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고, 신경회로가 생겨나거나 더욱 강화된다. 나의 뇌를 내가 디자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호에서는 뇌의 가소성可塑性을 주제로 그간의 뇌에 대한 오해를 벗겨보자.
뇌가 지닌 유연한 적응능력, 가소성
이야기 하나, 정열적으로 일하다 퇴직한 한 남성이 이후 10년 사이에 급작스럽게 늙은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문득 자신 앞에 지난날 인생만큼이나 남은 인생이 많다는 사실을 깨우친 그는 다시 ‘배우기’를 시작했다. 나이를 잊은 그는 이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둘, ‘習(익힐 습)’이란 글자는 새가 날개 짓을 수없이 반복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반복과 연관되는 개념 중 습관과 중독의 구조적인 차이가 있을까? 새해가 되면 많은 흡연자들이 금연을 계획한다. 올해는 정부가 담뱃값까지 인상했는데, 어느덧 5개월의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흡연율은 여전하다고 한다. 좋은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있지만 그 습관이란 길들이기가 참 힘들다. 더욱이 중독을 끊고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는 금주, 금연은 오죽할까?
셋, 아내가 한 남자와 호텔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두 남자가 있다. 한 사람은 고객과 중요한 미팅으로 호텔식당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또 한 남자는 외도를 의심하고 자꾸만 떠오르는 부적절한 생각으로 괴로워한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예를 든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서로 상관없을 법한 이 이야기가 사실 모두 ‘뇌의 가소성’과 관련이 깊다. 본래 ‘가소성可塑性’이라는 말은 외부의 힘에 의해 고체에 변형이 일어났는데 그 외부 힘을 제거한 후에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변형된 그대로 남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개념이 뇌 신경계 연구에 쓰이면서 뇌의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란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뇌세포나 뇌 부위가 학습이나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학습이나 기억에 있어 비교적 짧은 기간의 사이에 가해진 자극에 의해 뇌에 장기적 변화가 일어나서 그 자극이 없어진 후에도 변화가 지속되는 ‘뇌기능의 유연한 적응능력(adaptive capacity)’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이는 뇌손상을 입은 환자에게 재활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뇌의 가소성은 무뎌져가는 기억력으로 고민하는 어르신들께,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학생들과 초심자에게도, 그리고 이제 중년으로 접어든 필자에게도 무척 고마운 소식이다. 이번 주제가 각성과 희망의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뇌의 가소성이 이 분야의 일반론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뇌손상 환자의 언어재활이 전공분야였던 필자는 신경심리학에도 소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분야 최고 석학이었던 모 교수님께 간곡히 청강을 요청했었다. 허락은 겨우 받았지만 교수님은 한 가지 견해 차이를 분명히 밝히셨다. “자네는 뇌의 가소성을 믿겠지만, 난 그렇지 않아. 재활을 통해 생긴 능력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 가지고 있었던 능력이 자연스럽게 회복한 것이라고 봐.” 지금도 일부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뇌과학 분야가 발전한 만큼 뇌의 가소성을 증명하는 연구는 이제 너무도 많다.
뇌는 늙지 않는다
『브레인 룰스Brain Rules』의 저자 존 메디나John Medina는 “신생아의 뇌는 ‘조립요망’이란 스티커를 붙이고 나와야 한다.”고 표현했다. 사람의 뇌는 태어날 때 일부만 조립되어 있고, 몇 년이 지나야 온전히 조립이 된다. 아이가 세 살 정도가 되면 뇌의 특정부위에 있는 연결고리가 두세 배 늘어난다. 그리고는 뇌는 가지치기를 하듯 연결고리를 잘라버린다. 이 과정이 사춘기를 겪으며 또 일어난다. 미친 듯이 자란 신경가지들을 잘라내고 다시 어른과 비슷하게 정렬된다. 요약하자면 미운 세 살이 되면 뇌 속에서 엄청난 활동이 일어나고, 무서운 십대가 되면 그보다 더 격렬한 활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 매일 혈압을 올리는 우리 집 꼬맹이들이 왜 그러는지, 사춘기 시절 나는 왜 그랬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미친 듯이 뻗어나간 신경가지처럼 어느 것 하나 정렬되지 못하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어른은 조금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성장과정에서 뇌회로는 계속해서 재편성되고, 평생 동안 뇌 안에서는 변화가 지속된다.
얼마 전 서점에서 『뇌는 늙지 않는다』(다니엘 G. 에이멘 저)는 책이 눈에 띄었다. 이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적 주의집중이 된 것이긴 하지만, 제목이 정말 기막히지 않는가! 뇌는 늙지 않는단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지갑이든 핸드폰이든 열쇠든 꼭 한 가지를 잊고 나가는 건망증 때문에 아내에게 “정말 한결같은 남자”라는 핀잔을 듣는다. 필자만 그런가? 혹시 무언가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고,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고, 배움의 때를 놓쳐버렸다는 상실감에 빠져 본 적은 없으신지? 자! 여기 뒤통수를 번쩍 때리는 연구가 있다.
매너리즘을 극복하라
일본 도쿄대 이케가야 유지池谷裕二 박사는 “뉴런Neuron(신경세포)의 수는 질병에 걸리지 않는 한 평생 동안 변함이 없다. 신경세포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미세한 구조는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했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에서 어린 토끼와 늙은 토끼에게 각각 새로운 자극을 훈련시켰는데, 역시 어린 토끼가 더 빨리 학습을 했다. 그런데 뇌의 신경세포 수가 변함없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그 차이는 뇌파의 일종인 세타파(Theta wave)에 있었다. 세타파는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거나 사물에 주의와 흥미를 가질 때 즉 ‘무엇을 하고자 하는 기분’일 때 나온다. 늙은 토끼는 이 세타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타파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실험을 했더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어린 토끼는 변함이 없지만, 늙은 토끼는 시행 횟수 절반 만에 80%의 달성률을 보였다. 즉 나이를 먹어도 뇌 자체의 능력은 약해지지 않는다. 뇌의 실체는 젊을 때 그대로이다. 세타파는 주의력, 흥미, 탐구심에 관련되어 있다. 나이를 먹으면 바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쯤이면 눈치채셨을 것 같다. 맞다,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어버리는 ‘매너리즘mannerism’이 학습의 최대 적이다. 이케가야 박사는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던지, 뇌세포가 준다던지 하는 협박을 이제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굳어진 뇌 회로를 유연하게(가소성이 높게) 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익숙했던 것을 달리 생각해보는 것, 나와 다른 생각, 입장에 서보는 것 등이다.
뇌의 가소성은 뇌가 손상된 환자의 경우엔 뇌의 다른 영역이 잃어버린 기능을 대신하는 것을 의미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습관을 고치려는 사람에겐 학습과 훈련을 통해 신경회로(시냅스)를 재배열,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지와 반복이라는 도구를 통해 얼마든지 스스로 자신의 뇌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자기성찰
지난 호에서 브로드만Brodmann 뇌지도를 통해 대뇌피질의 각 부위가 특정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브로드만의 뇌지도는 대략적인 위치일 뿐이고 사람마다 정확한 뇌지도는 개별적이다. 얼굴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조차도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뇌의 회로도 사람마다 다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것은 저마다 경험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왜 똑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까? 습관이란 참 무섭다. 경험과 반복을 통해 강화된 신경회로는 새로운 자극에도 무의식간에 처리한다. 만약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남편과,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남편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들의 경험과 환경이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처리하는지 차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1976년)에서 문화의 진화를 설명할 때 등장한 ‘밈meme’이란 용어가 있다.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통해 생물학적 정보를 전달하듯, 밈은 모방을 거쳐 뇌에서 뇌로 개인의 생각과 신념을 전달한다. 반면 뇌에는 거울뉴런이라는 ‘모방을 하게 하는 뉴런’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특정행동을 볼 때 마치 자기가 직접 하는 것처럼 같은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거울뉴런’이 인간사회에서 보이는 다양한 모방들에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데, ‘밈’을 설명하는 데 거울뉴런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끔찍스러운 장면이나 불쾌한 행동을 볼 때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아이들의 눈을 가린다. 모방이 일어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위와 의식을 뇌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현상론적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반복과 학습으로 강화된 뇌 회로는 새로운 해석을 방해하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자기개발 도서들을 들여다보면 ‘나쁜 행동을 줄이고, 좋은 행동을 반복하라’는 지침이 결코 빠지지 않는다. 몸에 습관을 들이라는 말은 뇌에 각인하란 뜻이기도 하다.
긴 사설의 요점을 정리하면, 건강하고 젊은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너리즘’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의 저자 바버라 스트로치Babara Strauch는 어휘, 언어기억, 귀납적 추리, 직관력, 통찰력이 절정에 달하는 뇌는 ‘중년의 뇌’라고 했다. 이제 ‘뇌의 절정기’에 도달한 중년들이여! 배워도 금방 잊어버린다고 주눅 들지 말고 뇌를 유연하게 해보자. 굳어진 뇌 회로를 유연하게 하는 좋은 방법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익숙한 것과 달리 생각하기, 너무 빨리 판단하지 말기 등등이다. 시간을 내어 잠깐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뇌를 활력있고 유연하게 만드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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