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天理는 때가 있고 인사人事는 기회가 있다
道紀 132년 8월 2일, 증산상제님 어천치성, 증산도교육문화회관 태을궁
[말씀요약] 이 세상은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틀 짜놓은 그대로, 바탕을 정해 놓으신 그대로 머리털만큼도 틀림없이 둥글어 간다. 그런데 상제님 공사를 집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사人事다. 그것은 사람이 해야 되는 것이다. 사람은 때에 맞춰 자기가 일을 찾아서 해야 되지, 천 개의 이론이 하나의 해결 턱이 되들 않는다. 봄이 왔어도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가서 거둘 게 없다. 상제님 사업은 유형과 무형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신앙을 해야 한다.
지나간 봄, 여름 세상에는 종교를 안 믿어도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시로 반본하는 가을 세상이 돼서, 누구도 가을 정사政事에 묶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을 정사라 하는 것은 참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천지에서 인간농사 지은 것을 추수하는 것을 말한다. 봄, 여름 세상에서 가을 세상, 좋은 세상으로 넘어가는 데는 오직 한 길이 있다. 그게 상제님이 천지공사로 설정해 놓은 증산도라는 가교架橋다. 증산도라는 다리를 타고서만 후천 지상선경, 조화선경, 현실선경을 갈 수가 있다.
우리 신도들은 도장을 성장시키려 할 것 같으면 서로 화합부터 해라. 사람은 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남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 남의 생각을 잘 수용해서, 그 사람 말도 좀 받아주고, 타협을 해서 좋게 화합을 해라. 그게 바로 봉사다. 사람은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조그만 것은 다 양보하고 관용성을 가져야 한다.
상제님이 참하나님으로서 하추 교차기에, 꼭 참하나님이 오셔야 하는 시기에 오셔서 천지공사를 그렇게 설정을 하셨다면, 그것을 확신한 다음에 신바람이 나서 스스로 신앙도 하고 스스로 판도 짜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일은 첫째도 포교요, 다섯째도 포교요, 열째도 포교다.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고 교육을 시키고, 그저 상제님의 혼이 되고 증산도의 수호신이 돼서 상제님 사업에 도움 되는 일만 할 수밖에 없다. 천리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 나가면 반드시 꿀을 따가지고 돌아오는 우리나라 토종벌 밀봉들처럼 우리 신도들도 책임감을 통감하고서 스스로 포교를 해라. 절대로 누가 해라 해서 하는 건 소용없다.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한다. 반드시 스스로 포교를 해서 증산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신도가 되란 말이다.
사람은 진실하게 살아야 가을철에 성숙된 열매가 되는 것이다. 하니까 성실한 신도가 돼서 아주 알캥이, 고갱이, 100% 여물 수 있는 진실한 신도들이 되어라. 복록福祿도 성경신誠敬信, 수명壽命도 성경신이다. 잘 살고 못 살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상제님, 참하나님 신앙을 얼마만큼 잘 하느냐 하는 데 정답이 있다. 그러니까 상제님을 잘 신앙해서 개벽하는 세상에 살고,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 남도 살려 주어라. 남을 많이 살려 줄 것 같으면 천지에 공을 쌓는 천지의 역군이 되는 것이다. 후천 오만년 자자손손 계계승승 복을 쌓는 일이다. 그러니까 신앙 잘 해서 모두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이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해라
상제님 말씀이 “평천하平天下는 내가 할 테니 치천하治天下는 너희들이 해라.”라고 하셨다. 또 상제님 공사 내용이 그렇다. 평천하, 곧 상제님이 화권으로써 ‘신명공사에서 이 세상 둥글어갈 판은 내가 짤 테니 인사人事 문제는 너희들이 맡아라. 이 세상 둥글어가는 신명공사는 내가 그렇게 되도록 틀을 짜 놓을 테니, 그 도수에 따르는 인사 문제는 너희들이 맡아야 된다.’ 하는 말씀이다.
그 상제님 천지공사 내용 이념에 의해 세운도 3변, 도운도 3변이다. 세운의 3변이라고 할 것 같으면 애기판·총각판·상씨름판이다. 다시 말해서 1차 대전, 2차 대전, 6.25동란 3차 대전이다. 애기판은 까까중이 싸우고 총각판은 머리 땋은 사람들이 싸우고, 3차 대전 상씨름은 상투쟁이끼리 씨름을 해 가지고서 마지막 매듭을 짓는다. 우리나라 남쪽 상투쟁이 북쪽 상투쟁이가 상씨름을 해서 이번에 매듭을 짓는다는 말씀이다. 그게 세운이고, 내적으로 도운도 1변 2변 3변으로 둥글어 간다.
헌데 상제님은 신도神道로 이화理化해서 현묘불측지공玄妙不測之功을 거두는 천지공사 마무리를 다 하시고서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서 물샐 틈 없이 도수를 굳게 짜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린다.”고 하셨다.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틀 짜놓은 그대로, 바탕을 정해 놓으신 그대로 이 세상은 머리털만큼도 틀림없이 둥글어 간다.
그런데 상제님 공사를 집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사다. 그것은 사람이 해야 되는 것이다. 천지공사에서 정한 신명神明들이 사람에게 붙어서 한다. 상제님 사업도 신명과 사람이 같이 하는 것이지 신명을 떠나서 되는 일이 아니다.
한 개인이 신앙을 하는 것도 그렇다. “나를 믿는 것은 조상의 음덕으로써 믿게 된다.”는 상제님 말씀과 같이 조상의 음덕이 없는 사람은 상제님 신앙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내가 참 많이 얘기도 했지만, 적덕가積德家의 자손이 들어왔다 나가려 할 것 같으면 너는 여기를 떠나면 죽느니라 하고 신명들이 뒤통수를 쳐서 집어넣고, 적악가積惡家의 자손이 들어오면 너는 여기 못 있을 데니라 하고 앞이마를 쳐서 내쫓는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전부가 다 조상에서 적덕을 많이 한 사람의 자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무엇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늘 “천리天理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는 구호도 부르짖지만, 사람은 때에 맞춰 자기가 일을 해야 되지, 봄이 왔어도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가서 거둘 게 없다. 아니 이건 천지의 역사인데, 상제님 도문에 들어왔어도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았으면 어떻게 하나?
배고프면 먹어야 되고, 밥을 한 그릇 먹는 것도 땀을 흘려가면서 수저로 입에다 주워 넣어야 되고, 냠냠하고 깨물어야 되고, 저작을 해서 삼켜야 될 것 아닌가. 상제님 말씀에도 “우리 일은 남 죽는 세상에 살자는 일이요 나 살고 남 산 그 뒤 세상에는 잘도 되자는 일이다.”라고 하셨다.
사람은 자기가 일을 찾아서 해야 되지 천 개의 이론이 하나의 해결 턱이 되들 않는다. 앉아서 이론으로만 만날 중얼대야 소용도 없다.
유형, 무형의 힘을 모두 쏟아야 한다
그 전 상제님을 믿던 종파가 지금도 여러 개가 있다. 그저 다섯 명, 열 명, 혹은 스무 명이 신앙을 하는데 그 사람들이 신앙을 못 쓰게 한다. 진리를 모른단 말이다. 그 사람들이 평생을 믿은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상제님의 대세가 굽이쳐지는 것을 모른다.
우리 증산도 신도들은 증산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이 있다. 그러나 종도사 종정이 교육시키는 것만 가지고서도, 멍청이가 아니면 상제님 진리를 꿰뚫고도 남는다.
하니까 구체적으로 책도 좀 더 보고, 그렇다고 해서 만날 박 파듯이 책만 보라는 게 아니다. 반드시 육임을 짜라. 아, 활쟁이가 과녁을 적중시키지 못할 것 같으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잖은가.
내가 다시 한 번 말을 하지만 옛날 사람들이 “이재만궁지간利在挽弓之間이라.”고 했다. 이로운 것, 성공을 하는 것은 활을 쏘는 활쟁이가 과녁을 상대해서 어떻게 활시위를 잡아당기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로울 이 자, 있을 재 자, 당길 만 자, 활 궁 자, 갈 지 자, 새길 간 자. 이로울 이 자는 열매기 이, 살 리, 이끗 이 등 여러 가지로 풀이된다.
성공하는 것, 매듭을 짓는 것을 활쟁이가 과녁을 상대해서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것으로 한번 연상해 보라는 말이다.활쟁이가 과녁을 상대해서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데 유형, 무형의 힘이 100% 집중이 된다. 만일 거기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과녁을 못 맞히게 되는 것이다.
상제님 사업이라 하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내가 입버릇처럼 유형도 바치고 무형도 바치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신앙을 하라는 것이다.
춘생추살은 천지에서 바꿀 수 없는 진리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상은 정역正易의 세상이다. 그렇다면 남은 게 의통목밖에 없다. 이 살기 좋은 세상에 다 죽는다는 소리를 자꾸 할 수도 없고 한데, 의통목이라면 그저 상제님 말씀과 같이 “오다 죽고 가다 죽고 서서 죽고 밥 먹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제님이 내가 사는 방법만 가르쳐 주마 하셨다.
이것은 상제님이 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춘생추살春生秋殺,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 죽이는 것은 천지불역진리天地不易眞理다. 천지에서 바꿀 수 없는 진리다.
우주원리라 하는 것은 봄에는 물건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리는 것이다. 천지의 대덕大德으로도 춘생추살, 봄에는 물건 내고 가을철에 죽여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천지 이치는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건 사람이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원리라고 할 수도 없다.
다시 묶어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주법도라 하는 것은 내고 죽이고 내고 죽이고, 그것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천지가 한 바퀴 둥글어 가면 한 번을 내고 죽인다. 일년 지구년 초목개벽도 봄에 초목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리고, 사람농사 짓는 우주년도 일년 초목개벽과 똑같은 방법으로 내고 죽인다. 그게 바로 우주원리다. 어떻게 생물이 그걸 부정할 수가 있나?
상제님의 화권으로만 새 세상을 갈 수 있다
내내가 교육을 할 때마다 도장을 성장시키려 할 것 같으면 첫째로 화합을 해야 된다고 한다. 옛말에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다. 집안이 화합해야 만사가 이루어진다. 한 가정도 그렇다. 두 내외와 자식들이 전부 화합을 해야 그 가정에 뭐이가 이루어지지 가정이 불화할 것 같으면 그 집은 종국적으로 망하는 수밖에 없다.
한 도장에도 역사적으로 여러 천 년 내려온 각 아배 자식 핏줄들이 뭉쳤다. 그걸 신앙사회라고 한다. 그런 신앙사회가 조직으로 묶여진 것인데 어떻게 내 비위만 맞춰 줄 수가 있나?
하늘땅이 생긴 이후로 왔다 간 수많은 성자들이 전부 다 봉사를 했다. 공자도 다 바쳐서 봉사를 했고, 석가모니도 다 바쳐서 봉사를 했다. 진리가 좋고 그르고 그걸 따지기 이전에 예수도 다 바쳐서 봉사를 했고, 모하멧도 다 바쳐서 봉사를 했다.
역사적인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 바쳐서 희생타가 돼버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희생을 했다. 그래서 그 업적을 두고 성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화로운 세상, 지나간 봄, 여름 세상에는 종교를 안 믿어도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시로 반본하는 가을 세상이 돼서, 누구도 가을 정사政事에 묶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을 정사라 하는 것은 참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천지에서 인간농사 지은 것을 추수하는 것을 말한다. 그 추수를 하는 권내에 묶여져야만 새로운 조화선경, 현실선경, 지상선경을 갈 수가 있다.
봄, 여름 세상에서 가을 세상, 좋은 세상으로 넘어가는 데는 오직 한 길이 있다. 그게 상제님이 천지공사로 설정해 놓은 증산도라는 가교架橋다. 증산도라는 다리를 타고서만 후천 지상선경, 조화선경, 현실선경을 갈 수가 있다. 이 지구상에 사는 60억 인류가 상제님 진리권을 타지 않고서는 누구도 후천 세상을 갈 수가 없다. 하늘을 쓰고 도리질을 하는 사람도 이 길을 밟지 않고서는 절대로 갈 수가 없이 되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께서 한마디로 묶어서 “천하창생의 생사가 너희들 손에 매여 있다.”고 하신 것이다. ‘천하창생의 생사가, 60억 인류의 죽고 사는 것이 너희들 하기에 달려 있다. 너희들 하기에 따라서 많이 살릴 수도 있고 적게 살릴 수도 있다.’고, 상제님이 일언이결지一言以結之 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대덕으로도 춘생추살이 있다.”고 하셨다. 봄에는 물건을 내고 가을철에는 죽이는 게 천지 이치라는 말씀이다. 또 “천지에서 십 리에 한 사람 볼 듯 말 듯 하게 다 죽이는 때에도 씨종자는 있어야 쓰지 않겠냐?”고도 하셨다.
천지 대운이 바꿔지는 데는 금력도 소용없고 재산도 소용이 없고 권력도 소용이 없다. 다만 상제님의 조화정부, 상제님의 화권으로, 그 진리를 타고서만 넘어갈 수가 있다. 그건 달리 아무런 방법이 없다. 돈 있는 사람이건 돈이 없는 사람이건, 지위가 있는 사람이건 지위가 없는 사람이건, 누구도 상제님 조화정부의 화권을 타고서만 새 세상을 갈 수가 있다.
상제님 신앙의 빨간 정성과 상제님 사업의 외길 인생
여기 있는 우리 신도들이 아무리 세상의 박해를 받는다 하더라도 나 같은 박해를 받았으면 아마 증산도 못하겠다는 신도도 많이 나올 게다. 그러나 이 증산도 종도사는 외길 인생이다.
8.15 후, 그때는 어느 시대였냐 하면 우리나라 국시國是가 반공이었다. 그때 박헌영이라고 하는 사람이 남로당을 조직해서 활동을 하는 때여서, 셋만 모이면 공산당이라고 잡아갔다. 잡혀가면 맞아서 반병신이 되었다. 그런 시절에 내가 전국을 횡횡하면서 재주도 부렸다. 어떤 경찰서에 가만히 숨어들어가서 보니까 안흥찬이를 체포하라고 되어 있다. 허나 내가 공산당이 아니잖은가? 그렇게 대정부 투쟁을 해 가면서 상제님 사업을 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신도들을 규합했단 말이다.
그렇게 죽어도 좋다고 생명을 걸고 상제님 사업을 하는데 신명들이 옹호해 줄 것 아닌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죽어져서 넋이야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상제님을 신앙하는 그 일편단심, 그런 빨간 정성을 가지고 상제님 사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외길 인생을 걸어온 것이다.
그렇게 전부를 다 바쳤어도 내가 죽지도 않았다.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전부를 다 바쳐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이율배반적으로 절름발이 신앙을 하면 신명들의 음호를 못 받는다.
서로 화합하라
우리 신도들은 도장을 성장시키려 할 것 같으면 서로 화합부터 해라. 두 내외간에도 마음이 잘 안 맞는 것이다. 박가하고 김가하고 사는데, 혈통도 각각이고 몸뚱이도 각각으로 생겼고, 남성과 여성으로 성분도 각각인데 어떻게 그 비위가 맞을 수가 있나? 또 내가 낳은 자식도 내 생각과 합치가 안 되는 것이다.
헌데 어떻게 도장에서 내 비위를 맞춰 다오 하는가. 그런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해 놓고서 절대로 성공할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남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걸 잘 포용해야 한다. 남의 생각을 잘 수용해서, 그 사람 말도 좀 받아주고, 또 그 사람이 필요하면 내가 상긋상긋 웃는 얼굴로, “나 좀 봐. 이건 이러니까 이래야 될 것 아니야? 우리 같이 서로 잘못된 건 시정하고 서로 힘을 합해서 일을 하자.”고 타협을 해서 좋게 화합을 해라. 그게 바로 봉사다.
그렇게 봉사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이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이지, 봉사정신이 결여된 사람은 절대로 사회생활도 못 하고 상제님 사업도 못 하고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다.
큰일을 하는 사람의 성품
내가 여러 번 말을 하지만, 옛날에 장공예張公藝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성은 장가고 귀 공 자 재주 예 자, 이름이 공예다. 그 사람이 9대를 한 집에서 살았다. 3대 4대가 살기도 어려운데 9대를 한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9대가 한 집에서 사니까 개도 많이 먹였을 것 아닌가? 그 집의 개들은 어떠냐 하면 그 많은 개들이 일견一犬이 불래不來면, 개 한 마리가 오지 않으면 제견諸犬이 불식不食이라, 모든 개가 먹들 않는다고 했다. 그 개 한 마리가 오기를 바라고서 여러 개가 기다린다는 것이다. 화합하는 가정이니 그렇다.
그런데 누가 와서 장공예에게 묻는다. “아니 2대 3대를 한 집에서 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9대를 한 집에서 동거생활을 합니까?” 하니까 장공예가 아무 말도 없이 큰 종이 한 장을 꺼내 놓고서 거기다가 참을 인忍 자 100자를 써서 준다. 그 100인忍이라는 소리가 백번 참으라는 말이다. 그래서 백인당중百忍堂中에 유태화有泰和라, 백 번 참는 집에는 크게 화합함이 있다고 한다.
사람은 그저 참아야 한다. 상제님도 “넘어오는 간을 잘 삭혀 넘겨야 한다.”고 하셨잖은가.
사람은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조그만 것은 다 양보하고 관용성을 가져야 한다. 관용성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을 못 사는 것이다. 가정생활도 제대로 못 한다.
한 집에서 살다보면 괴상한 마누라도 있잖은가? 그래도 하 예쁘다 하고, 남편 보고 시집왔는데 참 고생 많이 한다고 해 보아라. 좋다고 하지, 예쁘다고 하는 남편에게 반항하고 덤비겠나?
또 사나이가 못돼먹었으면 아낙네가 주부로서 잘하면 얼마고 고쳐나갈 수가 있다.
어떤 사나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고약하게 대한다. 못돼먹었다. 불효자다. 그러니까 마누라가 보따리를 싼다. 자식도 몇 낳고 했는데, 보따리를 꾸리니까 남편이 “왜 보따리를 싸냐?”고 묻는다. 하니까 마누라가 “당신이 아버지에게 그렇게 불효를 하는데 내가 자식 낳았어야 소용이 없지 않으냐? 당신이 부모에게 하는 것을 보고서 내 자식들도 불효자밖에 더 되겠냐? 내 자식들도 결국 불효자 되는데 당신하고 그만 살아야지 자식 키워서 뭘 하겠냐?” 한다. 남편이 가만히 생각하니까 옳은 말이다.
그건 그냥 잘하라고 해서는 말을 안 듣는다. 그러니까 정책적으로 그렇게 남편 버릇을 고쳐서 효자 아닌 효자를 만들어서 살았다는 것이다. 여자도 사람이 관용성이 있고 정책적이면 사나이 하나쯤은 그렇게 고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은 요령도 있어야 되고 관용성이 있어야 한다. 큰일 하는 사람은 아량과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라.
스스로 신바람 나서 신앙을 하라
증산도가 조금 있으면 사회 속에서 ‘야, 과연 증산도는 상생의 도다!’ 하고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지구상에 상생相生의 도가 증산도밖에 더 있나? 지금 홍보하고 성장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멀지 않아서 증산도가 사회 속에서 인정을 받는다. 그렇게 돼서 ‘야, 과연 증산도 민족종교, 민족종교 증산도, 증산도 세계종교, 세계종교 증산도다!’ 하는 소리가 종국적으로 나올 것이다. 상제님 진리로 보아도 그렇고, 우리 신도들 짐작으로 해서도 뻔하지 않은가?
학자들 입에서 드문드문 그런 얘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와~” 하고 덤벼들 것이다. 그건 명약관화明若觀火, 밝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하니까 공연스레 편하게 복부인 노릇만 하려고 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포교를 해서 판을 짜라.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라, 하늘 이치에 순응하는 사람은 흥하고 하늘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
신앙하는 데 들어오면 마음도 편하고 좋아야 되지, 자꾸 거짓말이나 하고 남의 비위나 거스르면 안 되잖아? 증산도는 억지가 하나도 없잖은가? 다 자율에 맡겨서 신바람이 나서 하라는 것이다. 포교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는 상제님 진리만 교육시키는 데다. 상제님 진리가 과연 우주원리고 우주원리가 상제님 진리다. 그래서 다른 데 갈 데가 없다. 상제님 진리에 떠나서는 어디 설 데가 없다.’ 이렇게 스스로 판단을 해서 신앙을 하는 데다.
상제님이 참 하나님으로서 하추 교차기에, 꼭 참 하나님이 오셔야 하는 시기에 오셔서 천지공사를 그렇게 설정을 하셨다면, 그것을 확신한 다음에 신바람이 나서 스스로 신앙도 하고 스스로 판도 짜야 하는 것이다.
책임감을 갖고 포교를 하라
그 동안에도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앞으로는 서로 코에서 누렁내가 나도록 교육도 시키고 교육도 받아라. 그렇게 해서 지방에 나가서 상제님 진리를 교육을 시켜 주어라. 절대로 만나서 서로 잡담하지 말고, 허송세월 하지 말고 도담 나누고 교육을 시키란 말이다.
어려운 포교는 공동작전도 해가지고 포교를 많이 해라. 첫째도 포교요, 다섯째도 포교요, 열째도 포교다.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고 교육을 시키고, 그저 상제님의 혼이 되고 증산도의 수호신이 돼서 상제님 사업에 도움 되는 일만 할 수밖에 없다.
천리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
천리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
천리는 때가 있고 인사는 기회가 있다.
내가 밀봉蜜蜂, 꿀벌 얘기를 가끔 하는데, 밀봉은 우리나라 토종벌에만 있다. 우리나라 토종벌은 꿀을 따러 나갔다가 그냥 들어오면 수문장이 지켜 섰다가 모가지를 똑 따서 죽여 버린다. 그 밀봉군이 여러 천 마리다. 그러면 그 꾀부리고 장난하는 벌들 모가지가 다 떼여서 죽었을 터인데, 꿀통 밑에를 가서 보면 모가지 떨어져서 죽은 벌이 별로 없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토종벌 밀봉은 나가면 반드시 꿀을 따가지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 밀봉들처럼 우리 신도들도 책임감을 통감하고서 스스로 포교를 해라. 절대로 누가 해라 해서 하는 건 소용없다. 그건 가면이다. 신앙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한다. 반드시 스스로 포교를 해서 증산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신도가 되란 말이다.
우리나라 토종벌은 또 어떠냐 하면, 만일 벌을 먹이는 주인이 죽어서 벌통에다가 부고를 갖다가 붙여놓으면, 그 수많은 벌들이 목에다 하얀 테를 한다. 자기 주인이 죽었다고 복을 입어주는 것이다. 그 얼마나 의리가 있나? 그건 거짓이 없는 사실이다.
하물며 우리는 사람인데 그 꿀벌 턱도 안 된다면 얘기가 되겠는가?
진실하게 살면서 사람을 많이 살려라
사람은 진실하게 살아야 가을철에 성숙된 열매가 되지, 거짓으로 살면 빈탕밖에 안 되는 것이다. 하니까 성실한 신도가 돼서 아주 알캥이, 고갱이, 100% 여물 수 있는 진실한 신도들이 되어라.
상제님을 잘 믿으면 우선 건강하다. 진심을 가지고서 상제님을 신앙하면 절대로 큰 병을 안 앓는다. 우선 가정에 우환질고憂患疾苦가 없다. 또 매사가 잘될 수도 있다. 좋지 않은 일도 신명들이 다 끌러 준다.
잘 믿어서 복 받고 잘 살라는 것이다. 복록福祿도 성경신誠敬信, 수명壽命도 성경신이다. 잘 살고 못 살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상제님, 참하나님 신앙을 얼마만큼 잘 하느냐 하는 데 정답이 있다.
그러니까 상제님을 잘 신앙해서 개벽하는 세상에 살고, 내가 사는 성스러운 진리로 남도 살려 주어라. 남을 많이 살려 줄 것 같으면 천지에 공을 쌓는 천지의 역군이 되는 것이다. 후천 오만년 자자손손 계계승승 복을 쌓는 일이다.그러니까 신앙 잘 해서 모두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이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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