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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도전 탐구] 도전 속 인물

중국의 실질적 마지막 황제, 광서제

by 알라뷰 소녀시대 2014.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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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와 광서제의 사망, 그 숨겨진 비밀을 밝힌다!
 
 진성조 (증산도 본부)
 
 
1908년 11월 14일(음력 10월 21일), 청나라의 실질적 마지막 황제였던 광서제가 갑작스럽게 죽는다. 그 다음날 청국의 실권을 쥐고 국정을 좌우했던 철의 여인 서태후도 세상을 떠난다. 광서제는 왜 죽었을까? 그의 사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에 싸여있다. 1908(무신)년 음력 10월, 상제님께서는 광서제에게 붙어있던 황극신(皇極神)이 조선 땅에 넘어오게 하는 공사를 행하신다.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하시고 문득“상씨름이 넘어간다!”하고 외치시니 이 때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이로써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 공사를 행하시니… (道典5:325:8~9)
 
황극신은‘세계 만국을 통치하는 황제’와 관련 깊은 제왕신(帝王神)을 뜻한다. 광서제 사망 이후, 중국은 수천 년 간의 황제정치를 끝내고 민주공화정(1912, 중화민국 탄생)으로 바뀌는 역사적 변혁을 맞이한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 조선에서는 정반대의 사건이 있었다. 1897년 고종임금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수백 년간 잃어버렸던‘황제’의 호칭을 되찾는다.
 
고종황제의 등극과 황극신 공사 그리고 광서제의 죽음. 이들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청나라 건국시조는 한(韓)민족
중원대륙은 하-은-주의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고대한민족(동이족)과 중국 한족이 천하 패권을 다투는 역사로 점철되었다. 중국의 통일 왕조사를 보면, 대략 하-은-주-진-한-수-당-송-원-명-청나라로 이어진다.
 
송나라를 변방으로 밀어내고 중원대륙을 제패했던 금나라는 몽골(원나라)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러나 원나라에 패망했던 금나라의 후손인 누르하치(1583~1616)가 중원대륙을 다시 제패하여 후금(後金)을 세우고 이어 그의 아들이 국호를 청으로 바꾼다. 그리고‘누르하치’를 1대‘청 태조’로 모시고 자신은 2대‘청 태종’이 된다.
 
그런데 청의 뿌리인 금나라는 바로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다. 금나라 역사책인『금사(金史)』와 송나라 사람이 전해들은 이야기를 묶은『송막기문』과 그 외에『만주원류고』, 『고려사』등의 역사책에“금나라 시조의 조상은 신라인 또는 고려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청나라 역대 황제의 성명에는‘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성씨가 붙어있다. 이는‘조상의 나라, 신라를 늘 잊지 말고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청나라의 번영과 쇠퇴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중원대륙을 장악한 청나라는 여러 소국들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간다. 청의 4대~6대(1661~1795)인‘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3황제 시절은 최고의 전성기였다. 이때의 중국 영토는 중국 왕조사상 몽골제국(원나라) 시대를 제외하면 최대의 강역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청 태종의 조선침략을 시작으로 티벳, 미얀마, 만주 등 주변국에 대한 계속된 정복전쟁의 결과이다. 6대 건륭제 시절의 18세기 후반에는 영국을 통해 유럽과 물물교류를 하며 경제적으로도 크게 번영한다.
 
그러나 건륭제가 죽은 다음해인 1796년 이후 청은 급격히 쇠퇴기에 접어든다. 내란 진압에 따른 대군(大軍)의 경비소모로 국고가 바닥나고, 산업혁명으로 부강해진 서양세력이 동아시아로 진출하며 서세동점(西勢東点)의 시대를 맞게 된다.
 
또한 19세기 이후로는 은(銀)가격의 폭등, 영국의 아편수출 무역량 증가, 관료들의 심각한 부패, 백성들의 궁핍 등으로 국내는 더욱 불안해지고 나라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다 9대 함풍제에 이르러, 중국 역사상 측천무후(624~705)와 더불어 가장 유명했던 여걸 서태후(西太后:1835~1908)가 등장한다. 그녀는 9대 함풍제의 후궁으로 함풍제가 죽은 후 실권을 쥔다. 그녀는 10대 동치제와 11대 광서제를 대신하여 1861년~1908년까지 48년 동안 수렴청정을 통해 막강한 독재 권력을 휘두르며 최고의 실권자가 된다.
 
서태후와 광서제는 큰이모와 외조카 사이로 깊은 애증이 교차하는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다. 이들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은 황제정치를 끝내고 민주공화정으로 변천되는 분기점을 맞게 된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 태어난 황제, 광서제
우리는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오는‘12대 선통제 부의(뿌이)’를 기억한다. 그는 광서제의 뒤를 이은 어린 황제였는데, 그의 즉위 직전(1908)에 이미 광서제, 서태후의 사망으로 청나라는 거의 멸망한 상태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11대 광서제를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로 볼 수 있다. 상제님께서 광서제에 붙어있던 황극신을 넘기는 공사(도전 5편325장)는 이런 사실을 더욱 분명히 말해준다.
 
청나라의 실질적 마지막 황제인 11대 광서제의 본명은‘애신각라 재첨’이다. 그는 상제님께서 탄강하신 해와 동일한 1871년 신미생(辛未生)이다. 그의 부친 순친왕(혁환)은 9대 함풍제와는 친형제 간이고 모친은 서태후의 여동생이다. 광서제는 순수 황족(皇族)의 혈통을 갖고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출신 배경과 달리 그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불운이 따라다녔던 암울한 인생이었다.
 
1871년 음력 7월 초하루, 황실에서는 조종제사가 있었다. 제사를 위해 궁궐안팎에서는 제사를 올리기 전 3일 동안 모든 경축행사를 금지하는‘재계(齋戒:제사전의 심신청결)기간’에 들어갔다. 바로 이 기간에 광서제가 태어난다. 음력 6월 28일, 죽은 자를 애도하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 출생한 것이다.
 
서태후는 친아들인 10대 동치제가 19세에 질병으로 사망하자, 최고 권력을 계속 잡기위해 4살의‘재첨’을 황제(광서제)로 결정한다. 이로부터 광서제는 친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서태후를‘친부(親父)’격으로 모시며 황궁생활을 하게 된다. 서태후가 워낙 무섭고 엄해서 광서제는 그녀를‘친부’라고 불렀다. 서태후는 권력욕이 강했고 냉혹한 여인이었다.
 


 
서태후에 의해 길러진 광서제
서태후는 수하관료를 시켜 4세의 어린 재첨을 데려와서 강제로 황제(광서제)에 즉위시킨다. 서태후는 어린 황제를 길러내면서 그가 5살이 되자 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옹동화를 광서제의 스승으로 발탁하여 교육을 맡겼다.
 
광서제에게는 매일 꼭 해야 되는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오든 자애로운 동태후(함풍제의 제1황비)의 품에서 정을 받고 오든, 서태후 처소에 가서 무릎을 꿇고 벌벌 떨면서 인사를 올린 후, 그녀의 냉엄한 가르침을 받드는 일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 때부터 잔혹한 서태후 밑에서 늘 질책과 비판 속에 훈육된 광서제는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이며 타에 의존적인 자기억압적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
 
광서제는 서태후 앞에만 가면 얼어붙은 얼굴이었고, 서태후 역시 그의 그런 모습을 언짢아하며 점점 정이 멀어져갔다. 광서제 평생의 불행의 씨앗은 바로 악녀 서태후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태후는 자신과 닮은 후계자를 만들려했지만 광서제는 서태후와는 성품이 달랐다. 광서제가 6세 때, 어느 날 수업 중 책에 적힌‘재(財: 재물)’글자를 보고 “전 이 글자가 싫어요, 검(儉: 절약)이란 글자가 좋아요”라 말하며 군주의 미덕을 설명하는 모습에 스승 옹동화는 크게 감명을 받는다. 광서제는 서태후의 영향으로 인해 형성된 어둡고 나약한 면도 있었지만, 그의 본연의 모습인 도덕적이며 아름다운 성품과 뛰어난 학문적 재능의 양면성이 공존했던 것이다.
 
 
광서제의 친정(親政)과 근대화개혁의 실패
19세 때(1889) 광서제는 서태후의 조카‘융우’와 강제적으로 결혼하게 되는데, 이후로 서태후는 광서제에게 친히 국정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이때부터 황실 내 권력구도는‘보수적 후파(后派: 서태후 세력)’와 ‘개혁적 제파(帝派: 광서제 세력)’로 나뉘어 미묘한 대립이 생기기 시작한다.
 
1894년‘청일전쟁’에서 참패를 보았던 강유위(캉유웨이) 등의 신진개혁파들은 청나라의 망국적 상황을 타개하고 나라를 구할 해결책으로‘변법(變法)’을 구상한다. 변법이란 낡은 옛 법을 전면적으로 바꾼 새 법으로, 신속하게 청나라를 근대국가로 개혁함을 말한다.
 
광서제는 캉유웨이의‘변법상소문’을 중심으로 한 개혁을 공포하면서‘무술변법’의 막을 올린다. 그는 개혁파들을 중요 관직에 임명하고 1898년 6월 16일을 시작으로 매일같이 새로운 근대법을 국시(國是)로서 발표한다.
 
무술변법 운동의 개혁 모델은 바로 일본의‘메이지 유신(明治維新:1853~1877)’이었다. 광서제는 작은 나라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양제국에 맞설 수 있는 아시아 강대국이 된 것에 경탄했다. 게다가 청일전쟁의 패배를 겪으며 그는 일본의 근대화 모델을 본받을 것을 더욱 굳게 결심한다.
 
‘무술변법’의 내용은 과거제도 개혁, 근대적 학교와 군대 설치, 국가 지원 하의 상공업 발전 추진, 정부 부서의 구조조정, 철도 광업 개발, 인재양육, 선진 외국 문화서적의 번역과 보급 등으로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 걸친 총체적 개혁이었다.
 
그러나 무술변법으로 개혁파[帝派]에게 권력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한 보수파[后派]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서태후에게 달려가 그녀의 힘을 빌려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로 인해 무술변법은 100여일 만에 실패로 돌아간다.
 
무술변법의 실패이후 서태후는 광서제를 황궁처소에 구금하고, 측근들을 엄벌로 다스렸다. 황제의 권력을 잃은 광서제는 어릴 적부터 억압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서태후에게 반항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대한제국 선포와 광서제의 사망
이후 노예처럼 황궁 안에서 10년 동안 구금생활을 해오던 광서제는 1908년 11월 14일(음력 10월 21일) 38세의 젊은 나이로 비극적 인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다음날 위독했던 서태후도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광서제의 사망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의문에 싸여있다. 광서제의 사인은 병에 의한 정상사망설과 타인에 의한 독살설이 있다.
 
광서제는 서원(현 중남해) 영대 함원전에서 죽었다. 「청궁태의원」문건에 따르면, 당시 광서제에게 신경쇠약, 골결핵을 비롯하여 182가지 병에 대한 처방을 내렸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광서제는 20년간 유정(정액이 흘러나와 멎지 않는 병)을 앓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병들이 원인이 되어 정상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서태후 혹은 이연영(서태후의 대태감)이나 원세개에 의한 독살설이 있다. 『숭릉전언록』과『청피류초』등의 책에 의하면,‘ 당시 중병을 앓던 서태후는 자신의 죽음이후 광서제가 다시 집정하여 자신이 해놓은 정책들을 바꿀 것을 염려하여, 사람을 시켜 광서제를 독살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당시 청궁에서 어의였던 굴귀정이라는 사람은 〈일경〉이라는 잡지에 ‘광서제 임종 3일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궁에 들어가 황제를 만났을 때는 황제의 병이 점차 나아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악화되어 침대에서 구르고 배가 아프다고 외치다가 며칠 뒤 죽었다. 이는 분명 광서제가 누군가에 의해 독살된 것이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어쨌든 광서제 사망 이후, 손문(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1911)을 거치면서 청 왕조는 완전히 망하고 1912년‘중화민국(중국)’이 탄생한다.
 
 
황극신이 조선으로 넘어오다
광서제가 서태후에게 벗어나 실질적 황제권력을 회복하려 했던‘무술변법 운동(1898)’이전 해인 1897년 조선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고종임금이 그동안 중국을 대국으로 섬겼던 모화사대주의를 버리고, 이 나라가 황제의 나라‘대한제국(大韓帝國)’임을 선포하고‘황제 즉위식’을 치른 것이다. 그리고 2년 후(1899년) 고종황제는 대한제국 헌법을 국내외에 반포한다. 총 9조로 된 이 헌법은‘1조, 대한국은 세계 만국이 공인한 자주 독립 제국이다. 3조, 대한국 대황제(大皇帝)는 무한한 국권을 누린다. 5조, 대한국 황제는 육해군을 통솔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1908년 상제님께서는 광서제에게 붙어있던 황극신을 조선으로 넘어오게 하는 공사를 행하신다.
 
무신(1908)년 10월, 말씀하시기를“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 되어 있느니라.”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오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되었느니라.”하시니라.
 
 … 며칠이 지난 뒤에 말씀하시기를“이 소리가 운상하는 소리와 같도다.”하시며“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하시고 문득“상씨름이 넘어간다!”하고 외치시니 이 때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이로써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 공사를 행하시니, … 말씀하시기를“이제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하시니라. (道典5:325:1∼11)

 
실제로, 개혁에 실패하고 구금되어 있던 광서제는 1908년 음력 10월 21일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또한 이즈음 세계 각국의 정치체제도 거의 대부분 절대왕정이 무너지고‘자유민주 정치시대’로 전환되어 갔다.

그리고 상제님께서는 중국 광서제에게 붙어있던 황극신이 조선으로 넘어오게 된 인연은 만동묘(萬東廟,충북 괴산 소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신다.
 
병자호란 전후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집권층은 ‘대중화 명(明)이 망했으니 이제 조선만이 유일한 군자국’이라는 자존감을 더욱 높이고, 반청숭명(反淸崇明)의 사대주의를 더욱 고착화한다.
 
송시열의 유지(遺志)를 받든 제자 권상하는 1704년 선비들을 동원하여 임진왜란 때 원군해 준 명나라의 신종에게 제사지내는 사당으로‘만동묘’를 세운다.
 
만동묘는 설립 당시엔‘대중화 사대주의’의 상징과 같았다. 하지만 상제님께서‘황극신 공사’를 집행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맺어줌으로써, 거꾸로 조선이 대중화 즉 세계 종주국(宗主國)이 되도록 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상제님께서는“시속에 중국을 대국(大國)이라 이르나 조선이 오랫동안 중국을 섬긴 것이 은혜가 되어 소중화(小中華)가 장차 대중화(大中華)로 바뀌어 대국의 칭호가 조선으로 옮겨 오게 되리니 그런 언습(言習)을 버릴지어다.”하시니라. (道典5:118:3~4)
 
상제님께서는 이제는 중국이 대국이 아니라 앞으로 조선이 대중화, 즉 천자국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 역사적 표출은 바로 고종의 황제선언(1897)과 광서제의 급사(1908)로 첫 서막이 오른 것이다.
 
여기서 황제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 일반적으로 황제라 하면‘백성 위에 군림하는 절대독재자’로 인식한다. 그러나 실은 상고시대 동방문화 속에서의 황제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의 대행자로서 하늘의 뜻에 따른 신교의 가르침을 받아 만백성을 다스리는 대성왕(大聖王)을 뜻하며, 천자(天子)라 불렀다.
 
안경전 종정님께서는『개벽 실제상황』에서 천자국, 천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자는 인간세계를 대표하여 하늘(상제님)에 제사를 올렸고, 제후들은천자의명을받들어사역했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오랫동안 중국이 주변국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등 천자국을 자처해 왔다. 그러나 이건 어불성설이다. 후한시대의 채옹은『독단』에서 천자제도의근원에대해“천자는동이족임금의호칭이다. 하늘을아버지, 땅을어머니로 섬기는까닭에하늘의아들이라 한다”고 하여, 천자제도가 동방족(우리민족) 문화로부터시작되었음을밝혔다.『( 개벽 실제상황』156쪽)
 
원래 인류문화의 근원인‘신교(神敎)의 천자국’은 바로 우리나라였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이후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천자 칭호를 계승하여 왔던 것이다. 고구려 광개토태왕 때 천자와 같은 뜻의‘태왕(太王)’호칭을 쓴 바 있지만, 그의 비문에“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皇天之子)”라는‘천자(天子)’의 기록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처럼 우리민족은 하늘의 자손, 천제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갖고‘성신(聖神)의 가르침’인 신교를 받아내려 인류를 다스려 온‘천손(天孫)민족’이었던 것이었다.
 
 
천하의 중심이 될 대한민국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이신 상제님께서는 황극신 공사를 통해, 신교의 천자국이 바로 우리나라임을 세계 만방에 선포하셨다. 이것은 이제 우주가을 개벽의 원시반본(原始返本, 근본으로 돌아감)의 정신에 따라, 상고시대 하늘의 백성으로 인류 역사와 문명의 뿌리였던 천자국 대한민국이 다시 그 위상과 자존심을 회복하며 천하의 중심무대에 우뚝 서게 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일꾼들에게 다가오는 가을개벽을 극복하고 세계를 한가족으로 만드는 세계일가 통일문화, 상생의 새 문화를 열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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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도전』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 대원출판
 『개벽 실제상황』안경전 저, 대원출판사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전국 역사교사모임, 휴머니스트
 『광기의 제왕학』자오량 저, 한스미디어
 『하룻밤에 읽는 중국사』미야자키 마사카츠 저, 랜덤하우스중앙
 『정설청조12제』염숭년, 중화서국
 KBS 역사 스페셜, 〈신라최후의 미스터리, 마의태자〉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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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탐구] 도전 속 인물 | 백성을 위해 한번 죽기로 맹세한 백의한사 전명숙(주1), 만고명장이 되다

[도전 탐구] 도전 속 인물 |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진 비운의 천재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도전 탐구] 도전 속 인물 | 황혼의 제국에 드리워진 빛의 실마리 청나라 광서제光緖帝

[도전 탐구] 도전 속 인물 | 대한제국 고종 광무제高宗(1)

[도전 탐구] 도전 속 인물 | 대한제국 고종 광무제高宗(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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