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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도전 탐구] 도전 속 인물

지상과 천상에서 무한한 공덕을 쌓은 이마두利瑪竇대성사

by 알라뷰 소녀시대 2014.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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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역사상 최고의 공덕을 쌓은 분

석가 공자 예수를 포함한 동서고금 어떤 성자의 공덕도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신부님 즉 이마두(利瑪竇) 대성사님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마두의 공덕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나 천지신명들은 그를 떠받드나니 이마두는 신명계(神明界)의 주벽(主壁)이니라.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너희는 마땅히 공경할지라.(道典4:12:1∼2) 이마두는 서도의 종장이 되어 각기 그 진액을 거두고 모든 도통신(道統神)과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려 각 족속들 사이에 나타난 여러 갈래 문화의 정수(精髓)를 뽑아 모아 통일케 하느니라.(道典4:8:5∼6) 마테오 리치 대성사(大聖師)님은 인간계와 신명계에서 크나큰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신명세계의 중심이 되는 주벽(主壁)으로서, 우주를 주재하시어 가을 새 세계를 개벽하신 상제님을 보좌하고 계신다. 증산 상제님은 선천 문명의 정수를 뽑아 새 문명을 여는 바탕으로 삼기 위해 유불선 등 기존 문화권의 종장(宗長)을 교체하실 때 이마두 대성사님을 서양 기독교의 종장으로 임명하셨다. 그리고 서양 명부대왕도 겸하게 하셨다. 이마두 대성사님의 진정한 공덕은 종정님께서 쓰신책『이것이 개벽이다(상)』를 통해서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근대 지상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킨 분이 바로 지금은 신명으로 계신 이마두 대성사님이라는 것이다. 이 분의 열정적인 노력 덕분에 지상 인간계의 문화 장벽뿐만 아니라 신명계의 장벽까지도 총체적으로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과 신명이 자유롭게 교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성사님의 행적과 업적을 수록한 서적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동서양에서 숱하게 출간되었다. 하지만 모든 자료가 오직‘인간 리치’를 다룰 뿐이다. 리치 신부님을 연구하는 데에 평생을 바친 도쿄대학 명예 교수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는,『 마테오리치 -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2002)에서, 예수회 선교사로서 동아시아에 서구문명을 소개하여 중화(中華) 질서에 엄청난 충격을 안긴,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자연과학 지식과 중국 학문을 두루 갖춘 마테오 리치를 최초의 세계인으로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마두 대성사님의 공덕은 결코 이런 정도에 그칠 수 없는 것이다. 이 분이 베푸신 무한한 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인간 리치’와‘신명(神明) 리치’의 업적을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회에 가입하여 선교사가 되다

리치 신부님은 1552년 10월 6일, 천주교의 본고장 이탈리아 안코네(Ancone) 주 마체라타(Macerata) 시(市)에서 9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한은 마체라타 시장을 지냈다. 신부님이 태어날 당시 가톨릭 교계에는 종교개혁에 대한 대응으로 광범위한 혁신운동이 일어났다. 그 운동의 하나가 바로 예수회의 설립이었다. 곱슬머리에 눈이 푸른 건강한 미소년 리치는 성격이 활달하고 총명하였다.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서 책을 한 번 읽으면 즉시 암기할 정도였다. 가정교사 벤치 베니에게 라틴어를 배웠는데, 7세 되던 해 그 가정교사는 예수회에 가입하였다. 리치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라틴어와 희랍어를 배웠다. 아버지는 아들을 로마에 있는 명문대학 법과에 진학시켰으나 공부한 지 3년째 되던 해, 리치는 로마에 있는 예수회의 수련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간절한 기도생활을 하며, 순명과 겸비(兼卑)를 배우는 수사가 되었다. 인도로 전도여행에 나서기 전, 리치 수사님은‘이 길이 내 생애의 마지막 길이다. 이제 땅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시 예수회 신부들은 인도나 아시아 쪽으로 가서 전도하는 것을 천주님이 베푸시는 크나큰 은혜라 여겼다. 신부님은 27세에 인도의 수도인 고아(Goa)에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도착했다. 신학을 더 공부하고, 29세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582년에 중국 마카오에 당도하여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 전에 예수회의 동방 전교 책임자였던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성공적인 일본 전교에 이어 중국 전교에 도전하였으나 내륙에 상륙하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발리냐뇨는 그 유지를 이어 중국의 언어, 관습과 사상을 습득한 뛰어난 인재를 파견하여 닫혀 있던 중화제국을 복음화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인도에 있던 루제리를 마카오로 부른 데 이어 리치 신부님을 불러서 두 사람으로 하여금 전교를 하게 하였다. 중국에서 사제에 해당하는 계층이 승려이기 때문에 선교사들도 승려의 복색을 갖추고 활동했는데, 자오칭(肇慶)에서 최초로 선화사(僊花寺)라는 천주당을 세웠다. 1589년에 샤오저우(韶州)에 정착한 이후 중국인 구여기(瞿汝夔)를 교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신부님은 구여기에게 천주 교리와 서양 수학, 역학 등을 가르치면서 본인은 사서오경을 배우고,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또한 승복을 벗고 유자(儒者) 복장을 하고 서양에서 건너온 학자 이마두로서, 선비 신분으로 중국 선비, 관료들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중국 문인들에게 지도, 지구의, 천체의를 제작해 보이고, 한문으로 저술을 하였다. 1595년 신부님은 병부상서 석성(石星)을 따라 베이징에 진입하기를 시도하다가 고초 끝에 난창(南昌)에 근거지를 확보했다. 1597년에는 중국 전교 책임자가 되었다.  

 

중국문화를 존중하여 적응하는 전교 전략

 

신부님은, 아메리카 인디언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지 동물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인지 논의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사들, ‘정신계의 정복자’를 자임하며 무력과 교만으로 제국의 첨병 역할을 했던 여타 선교사들의 선교와 판이한 전교 전략을 세웠다. 신부님은 먼 길을 돌아 이국땅에 상륙하여 서구와 전혀 다른 신세계와 유구한 역사, 광대하고 위대한 문명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먼저 그 문명 속에 들어가서 배우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훌륭한 중국문화를 배우고 거기에 적응해 나가는 그의 태도는 명나라 고관과 사대부 사이에 큰 호감을 샀다. 신부님은 중국인이 공자를 숭배하고 조상을 받드는 것을 용인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유교의 도덕적인 가르침이 가톨릭 교리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겸허하게 배우고 일하는 과정에서 동서의 문명에 통달하고 문화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된 신부님은 가장 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구도자가 될 수 있었다.신부님은 마카오에 도착한 이후 베이징의 궁궐에 입성하기까지 십여 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며, 서양선비 이마두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였다.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에 신부님의 학식과 인품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서 중국 사회에서 명사(名士)가 되었다. 서양인에 대한 호기심에다가,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억력, 사서오경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교 교리를 풀이하는 놀라운 지적 능력, 자연과학자이며 동시에 인문학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부님의 성격은 대단히 개방적이어서 폭넓게 인간관계를 맺었고, 중국 유학자들도 신부님과 관계를 맺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  

서양 학문 소개와 저술

 

베이징에 입성하려고 북진하는 동안, 신부님은 서양 과학지식이 외국인을 미개인으로 취급하는 중국인의 시각을 교정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1584년에 신부님은 자오칭에서 세계지도인『여지산해전도(輿地山海全圖)』를 제작했다. 1594년에는 사서의 라틴어 번역을 완성하였다. 이듬해에 첫 한문 저작『교우론(交友論)』을 내어 큰 호응을 얻었으며 기억술에 관한 책『기법(記法)』을 저술하였다. 이어서 작은 도덕론 책자『이십오언(二十五言)』을 집필하고 난징(南京)에서도 지도를 제작했다. 중국에서 전교를 시작한 지 19년이 지난 1601년에 마침내 베이징에 들어가 신종(神宗) 황제(萬曆帝)를 알현하고자 했지만, 환관들에 둘러싸여 있던 황제를 직접 알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황제에게 자명종(自鳴鐘), 프리즘, 클라비쳄발로(악기), 천주상과 성모상 등 서양 진품을 진상하였다. 이때 자명종을 수리하고, 악기 연주법을 교수하면서 자금성에 머무르다가 베이징에 거주해도 좋다는 허가를 얻었다. 신부님은, 그레고리력(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율리우스력을 개정한 것)이라 불리는 현행 태양력을 1605년 경에 한문으로 번역하여 명나라 조정에서 신용을 얻었다. 또 서광계(徐光啓)와 함께 유클리드 기하학을 한역한『기하원본(幾何原本)』을 내고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이지조(李之藻)의 도움을 받아 제작하였다. 신부님을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서양의 천문학, 역법, 수학, 역학, 대포 제조술도 전하여 지식인과 관료들의 관심을 끌었다. 신부님은 중국 지식인은 물론 동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친『천주실의天主實義』(1603)에 이어『기인십편(畸人十篇)』(1608)을 출간했다. 『기인십편』은 불교와 도교에 대한 비판 대신에 동서문명을 융합하는 완숙한 정신을 보여준다. 신부님은 1909년부터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 이탈리아어로 중국 전교 역사를 서술하였다.  

 

천주(天主)는 곧 상제(上帝)

 

신부님은 자신이 모시는 천주(天主)와, 유교의 하늘(天)과 상제(上帝)님 신앙이 맥이 통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천주실의』제2편에서“우리나라(서양)의 천주는 중국말로 상제이다(吾國天主卽華言上帝).”, “우리 천주는 곧 옛 경전에서 말하는 상제이다(吾天主乃古經所稱上帝也).”라 하였다. 그리고『중용』, 『시경』,『 주역』,『 예기』,『 상서』등에 나온‘상제’의 용례를 들었다. 이것은 사실 우리 민족이 오랜 옛날부터 받들었던 우주 주재자 상제님이 유교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독교의 천주와 동일시한 것이다. 또『천주실의』에는, 후세에 서방 즉 인도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불교가 들어와서 원시 유교를 오염시킴으로 말미암아 후대 문인들로 하여금 영혼 불멸을 부인하고 천당과 지옥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게 만들었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불교와 도교의 공(空)과 무(無)개념을 비판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천국과 지옥, 내세관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당위성을 설명한 것이다. 책에서는 이기(理氣), 태극(太極) 등 이학(理學) 즉 신유학(新儒學)의 주요 개념도 부정했다. 이(理)는 결코 천주일 수 없으며 개체에 내재하는 형상(Form)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억지스러운 비판은 동서양 형이상학의 근본 차이에 대한 성찰과 이해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개념에 근거하여 시도한 이학 비판은 당시 유학자들로서 받아들이기는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동서문화 융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부님 사후에 예수회의 중국 전교 방식은 동서양에서 함께 비판을 받게 되었다. 기독교계에서는 이른바‘전례(典禮) 논쟁’이 일어났다. 근세 이후‘유럽 중심주의’는 서양문명과 기독교의 우월성을 근거로 삼아 다른 문화권에 일방적으로 강요하였다. 신부님과 예수회 신부들이 중국 문화에 적응하여 실천한 선교 정책은, 1715년에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공자, 조상, 하늘에 대한 숭배를 금지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또한 명말(明末)에 나온『파사집(破邪集)』에서 보는것처럼‘중화 중심주의’에 충실한 중국 보수주의자들도 천주교를 비판하였다. 강희(康熙) 황제는 1692년『천주실의』를 연구하고서, 신부님이 취했던 전교 방식만 허용한다는 유지를 내렸지만, 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동양에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큰 이상

 

신부님은 온갖 고난을 헤치면서 사명완수를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였기에 50대 후반에 이미 백발이 되었다. 기독교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이역만리에서 외길인생을 걸으신 신부님은, 1610년 5월 11일 베이징에서 운명하셨다. 5월 9일, 임종을 이틀 앞두고 신부님은 고해성사를 했다. 저녁때에는 헛소리를 했는데,‘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만들기 위해 중국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은 황제도 함께 개종했다’,‘ 국왕이 신자가 되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신부님은 만력제를 개종시키고 대명 제국 전체를 복음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환상에 빠졌던 것이다. 11일 오후, 신부님은 프랑스에서 앙리 4세의 고해신부로 사역하고 있는 피에르 코튼이 천주에게서 받은 그 영광에 대해, 축하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 달라고 옆에 있던 신부에게 말했다. 이런 일은 신부님이 품었던 전교의 궁극 목표, 중국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그 염원을 마지막 순간에 드러낸 것이 틀림없다. 저녁 7시, 신부님은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성인, 진정한 성인’이라 제각기 외치며 울었다. 서방에서 온 현자(賢者), 서태자(西泰子) 이마두 신부님은 자존적이고 폐쇄적이었던 중국인들에게 매우 생소했던 기독교의 씨를 성공적으로 뿌리고, 그렇게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황제는‘중화국 의(義)를 존경해 온 서양 유사(儒士)’의 덕을 인정하고 부성문(阜城門) 밖에 묘지를 하사하였다.  

 

천상에서 문명 발전을 위해 역사하심

 

이국에서 삶을 마감한 신부님은 죽어 천상에서도 수백 년간 인간세상을 위해 쉼 없이 일을 하셨다. 신부님은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신도(神道) 세계에서 더욱 정열적으로 활동하신 것이다. 폭넓은 인간관계와 근대과학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졌던 신부님은, 천주님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을 근간으로 하여, 동양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 이백여 년을 일심으로 역사한 끝에 문명을 근대화시키셨다. 서양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道典2:30:3∼8) 이처럼 신부님은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셨다. 천상문명을 그대로 본받아 내린 것이다. 20세기의 비약적 문명 발전은 지상 사람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신도세계에서 선행된 노력, 구체적으로 리치 신부님과 많은 문명신의 지고한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신부님은 이처럼 천국문명을 받아내려 근대문명을 혁신하고 신명계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셨다. 이에 따라 문명개벽의 활동 영역은 우주적으로 확대되고, 고도로 진보된 천상문명을 지구에 이식함으로써 장차 지구에 꽃피게 될 가을 우주촌 통일문명의 원원한 기초가 마련되었다.  

 

마침내 상제님을 이 땅에 모셔 오다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道典2:30:9∼17) 근대문명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교만과 잔포 때문에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이마두 대성사님은 천주님이신 상제님을 뵙고 세계를 구원해 주시도록 앞장서서 하소연하였다. 이마두 대성사님은 인간으로서, 동양문화에 전해져 왔던 상제신앙을 발견하였기에 마침내 천상에서 참 하느님, 상제님을 만날수 있었다. 인간계와 신명계에서 이루신 크나큰 공덕을 감안하여, 십천(十天) 무극 상제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이마두 대성사님을 구천상제(九天上帝)에 봉하여 광주 무등산 상제봉조(上帝奉朝) 혈에 장사지내 주셨다. 종도사님께서는, 『천지의 도 춘생추살』에서“마테오 리치 신부는 지나간 세상 성자들 중에서 인간 세상을 위해 쌓은 공덕이 가장 큰 분”이라 하셨다. 또한 “상제님은 요한이 계시 받은 대로‘장차 오실 분’이었지만, 리치 신부가 상제님이 오시는 데에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이라고 밝혀 주셨다. 이마두 대성사님은 일생을 한결같이 일심으로 사명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셨다. 대성사님이 보여 주신 믿음, 강인한 정신력, 관용하는 덕성, 사교술, 정성과 노력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미덕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마두 대성사님의 은덕을 입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은 대부분 그 공덕을 알지 못하지만, 성사님이야말로 인간과 세상을 위해 일심으로 혈성을 다한 최고 공로자이며 위대한 스승으로 인류 앞에 우뚝 서 있다. 새 우주를 맞이하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대성사께서 인간으로서 보이신 지고한 삶과 신명계에서 인류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그 사역을 깊이 인식하고 참 진리 실천자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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