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紀 149. 4. 14(일), 제주지역 순방 도훈, 제주연동도장
『도전』을 늘 가까이 두고 읽자
오늘 1년 만에 이곳 제주연동도장에서 우리 도생들을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일요치성 시간에 만나게 되었다.
우선 서두에서 하고 싶은 말은 『도전』을 늘 가까이 두고 읽어라는 것이다. 머리맡에, 공부방에, 사무실에, 직장에, 그리고 차 안에도 크고 작은 『도전』을 한 권씩 비치해서 틈이 나면 즐거운 마음으로 제대로 봐야 된다.
동서고금에 숱한 성현들의 말씀을 기록한 지혜로운 책, 경전이 있다. 불교에 8만4천 법문 소위 팔만대장경이 있다는 것을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지혜의 최고봉 「화엄경華嚴經」을 비롯해서 「금강경金剛經」, 「법화경法華經」이 있다. 반야 대법문, 반야 6백 부를 축약한, 스님들이 거리에서 읽곤 하는 「반야심경般若心經」도 있다. 「반야심경」은 ‘지혜의 중심이 되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그 이외에도 숱한 경전이 있다.
유가에 사전과 같은 「이아爾雅」라는 책이 있다. 이 「이아」를 포함한 열세 경전을 십삼경十三經이라 한다. 소위 사서삼경, 사서오경이 이 십삼경에 들어 있다.
또 기독교인들이 늘 자랑스럽게 가슴에 품고 다니는 「신약新約」과 「구약舊約」이라는 경전이 있다. ‘옛 약속Old Testament’과 ‘새로운 약속New Testament’이다. 이 신구약이 유럽 문명을 만들었고 신약 한 권에서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신약을 모르고 예수의 가르침, 기독교를 말할 수 없다. 그 핵심 주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다. 이 우주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그 아버지가 아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국에 갈 자가 없다. 아버지에게 갈 자가 없다’고 한다. 예수 중심의 진리 선언이다.
유교, 불교, 도교를, 유불선儒佛仙, 선불유仙佛儒 또는 불선유佛仙儒로 말한다. 노자, 장자 이전에 선도僊道의 신선들이 있었다.
인도에 고전 「베다Veda」 문화가 있었다. 베다는 신에게 계시를 받아서 쓴 지혜의 서책이다. 베다의 해설집에서 출발한 「우파니샤드Upanishad」도 있다. 이처럼 각 문화권마다 고유 경전이 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전 지구촌에 나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들어와도 우리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모른다. 이 시대에 기가 막힌 사건이다.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안 보는 사람이 70~80프로도 넘는다고 본다.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간 봉건시대를 살다가 조선 왕조가 패망당해서 일본 제국주의에게 35년간 지배를 받고 한 천만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역사 근원이 파괴됐다. 그것을 누가 복원할 것인가? 일본이 우리 역사를 파괴하고 조작했는데, 스스로 양심고백하면서 복원해 주겠는가? 그것을 중국 사람이, 몽골 사람이, 서양 사람이 해 주겠는가? 그것은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이 꼭 이루어야 하는 일생일대의 과제, 마지막 과제다. 우리 한국인의 궁극 사명, 마지막 사명이 바로 우리 문화의 근본정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도전』의 정의
『도전』은 어떤 책인가?
『도전』은 모든 꿈을 이루는 진리의 조화세계, 진리의 무궁한 보배 세계이다. 『도전』은 공자·석가·예수 성자의 가르침과는 그 위격이 전혀 다른 분의 진리 경전이다. 그래서 ‘경經’이라는 글자를 감히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대우주 생명의 근원, 질서의 근원, 도를 다스리시는 오직 한 분, 천지의 원 주인이신 조화주 아버지는 우주 정치의 통수권자, 주권자다. 그래서 한자문화권에서는 천상의 하나님이라 해서 상제님이라 한다. 상제라는 말 자체는 우주 정치를 행하시는, 삼계대권을 집행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하늘과 땅, 인간과 신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진정한 절대권자다. 그분이 직접 하신 말씀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도의 원전’, 줄여서 『도전』이라 하는 것이다.
『도전』은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상제님 말씀으로는 후천 5만 년 지상 선경낙원을 건설하는 진리 법전이다. 다른 말로 우주 헌법이다. 『도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온 인류에게 진리의 원액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면서 충격적으로 깨닫게 해 주는 마지막 진리 작품이다.
우리가 왜 꼭 『도전』을 읽어야 하는가?
『도전』을 읽어야 하늘땅이 어떻게 둥글어 가는지, 지금 우리는 어느 때 살고 있는지 깨닫는다. 이 세상이 왜 크게 요동치고 있는가? 이 세계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우리 인생과 역사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왜 남북이 분단되었으며 앞으로 통일은 어떻게 오는가? 이런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는 자는 증산도 도인들을 제외하고 이 지구촌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도전』을 읽기 때문에 비로소 아는 것이다.
『도전』 읽는 요령 세 가지
그러면 『도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첫째로 재미를 붙여서 읽어야 된다. 지구촌에는 온갖 서적이 나왔고, 각 문화권의 문화 원전이 있다. 음악 원전이 있고, 법학 원전이 있고, 각 분야별로 대가들의 문화 원전이 있다. 종교 문화에도 숱한 경전이 있다. 그러나 『도전』은 그런 일반적인 원전이 아니다.
한국에는 5천 년 넘게 쭉 내려오는 고유문화가 있다. 그런데 그 밑동이 파괴되어서 우리 스스로 그것을 알 수 없다. 우리는 『도전』을 통해서 그 본래 참모습을 찾는다. 본래 참모습 그것이 문화원형 정신이다. 원형문화다.
동서 어떤 문화 역사가 됐든지 그 근원이 있다. 그것이 인류 문화 탄생의 큰 자궁, 원형문화다. 문화가 아무리 발전하고 바뀌어나가도 그 문화의 근본정신은 바뀌는 게 아니다. 중동의 유대인들이 야훼신을 믿지만 그 바탕에 삼신칠성 문화가 있다. 불교에도 삼신칠성 문화가 있고 유교에도 삼신칠성 문화가 있다. 도교에는 삼신칠성 문화가 원형으로 살아 있다. 인도에도 도깨비신이 있고 삼신문화가 있다. 그런데 그 논리, 믿는 방식이 다르다. 거기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이 문화 원형을 한국인이 사실은 제대로 모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배운 적이 없다. 우리 조상들이 뿌리고 가꾸어 온 정신문화, 영성문화는 5천 년, 6천 년을 넘어 인류 문화의 고향, 저 환국에서 뻗어 내려온 것이다. 인간 마음속에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진리의 원형을 갈구하고, 애타게 찾는 향수병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뭘 이루었다, 자식을 낳고 좀 성공했다’ 해서 그것이 인생의 참된 명분이며 목적인가? 그것은 소중한 우리 삶의 일상적인 꿈이며 덕목이고 과제지만, 궁극의 참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인생은 생로병사라는 자연 법칙에 의해서 허망하게 늙어 죽는다. 이 짧은 인생에서 진정한 진리를 찾는 것이 절대 목적인 것이다.
둘째는, STB 상생방송의 <도전 콘서트>나 <개벽문화 콘서트> 내용을 보면서 진리 맥을 잡아야 한다.
팔관법八觀法은 인간으로 오신 천주님의 진리를 여덟 갈래로 나눠서 보는 것이다. 우주관, 상제관, 인간관, 신관을 공부하고, 인간과 신의 관계를 체험하기 위해서,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수행을 해야 한다. 우리가 『도전』을 읽으면서 진리 맥, 팔관법 맥을 잡으면 천지공사 결론이 종통관宗統觀, 수부관首婦觀이라는 것을 안다. 천상의 어머니가 오셨지만 그 어머니 하나님을 못 들어봤잖은가. ‘수부首婦’라는 언어는 불교에도 없고 기독교에도 없다.
이제 가을철 개벽기를 맞이해서 지구촌 인종을 추수하는 아버지 천주님의 대행자, 일꾼들이 나온다. 일꾼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새 역사를 여는 열쇠를 쥐고 있는 주인공들에 대한 아주 은밀하고 중대한 개벽공사를 한번 살펴볼까 한다.
그리고 끝으로 서로 연결되는 천지공사의 내용을 『도전』 성구 앞에다 써 놓아야 한다. 예를 들면 5편 184장 말씀은 이번에 남북을 통일하는 주역들이 나오는 공사인데, 이 공사와 연결되는 공사를 써서 딱지를 붙이기도 하고, 노트에다 메모도 한다. 그렇게 해서 쭉 보면 세 번, 다섯 번을 읽어도 열 번, 스무 번 건성으로 읽은 사람보다 훨씬 낫다. 그래서 요약, 메모, 정리를 하면서 『도전』 전체를 종합해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된다. 최소 이삼십 번 이상은 읽어야 『도전』을 보는 눈을 제대로 뜬다.
해원의 도의 궁극은 상생
제주 지역은 아주 자랑스러운 곳이다. 제주 시내에 가보면 ‘칠성로七星路’가 있고, 한라산을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州山이라 부른다. 제주에는 원형문화가 많이 살아있다. 그 원형문화를 신교神敎라 한다. 원형문화는 신교이고 신교는 원형문화다. 신교라는 것은 신의 세계를 보고 신을 진실로 가장 잘 받들고, 신명과 늘 교감하는 것이다. 신교는 신의 가르침이다. 지금 민주주의라는 것은 만 년 역사에서 한 백 년, 2백 년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98~99%가 신성문화, 신교문화 시대다. 유·불·선·기독교는 제2의 신교문화다.
근세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대사건이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4.3 사태인데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되는가? 이 문제는 좌와 우의 대립, 남북의 대결이었다. 그러니까 크게 보면 노동자, 농민을 중심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협력관계를 추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는 두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다. 역사에는 우도 좌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좌가 복지사회주의 쪽으로 흘러가고, 우가 수정자본주의, 창조자본주의 쪽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대결의 축약판이 한반도 분단의 역사다.
4.3 사태로 말미암은 천추의 깊은 한이, 작년에 대통령이 제주도에 와서 치유의 말씀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 그 응어리가 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을 진정으로 치유하려면 인간으로 오신 천주님, 상제님의 해원解寃의 도를 알아야 한다. 이 해원의 도라는 게 무엇인가? 해원의 도의 궁극은 상생이다. 해원과 상생의 도로써 좌우 대결이 치유되고, 궁극으로 하나가 되고,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열 수 있다.
새 역사를 여는 비밀의 눈은 무엇인가? 바로 지구촌 세계질서, 세계 정치판에 대한 천지공사다.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둔다는 오선위기五仙圍碁 공사다. 다섯 신선이 바둑판을 둘러싸고 바둑을 둔다는 것이다. 그 바둑판이 조선이고 바둑돌은 조선 사람이다. 이것은 아주 기가 막히는 천지이법에 의한, 천문지리에 따른 세계 정치판에 대한 천주님의 말씀이다.
근대사의 시작, 천주님과 수운의 문답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노선에 의해서 지구촌 세계질서의 판이 갈라지는 분기점, 출발점을 보통 근대사의 시작으로 본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영국의 아담 스미스Adam Smith(1723~1790)가 『국부론國富論』을 썼는데, 그때가 자본주의 문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진정한 근대는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출발했는가? 우리 자신의 문화 역사를 몰라서 동북아 중심이 아니라 서구 중심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 역사관의 주체성이 깨져 있는 것이다.
『도전』 5편 347장의 2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이 세계가, 자연이, 인간의 삶 자체가 얼마나 진리 근본에서 이탈되어 병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게 병세문病勢文이다. “병유대세病有大勢하고 병유소세病有小勢하니 대병大病은 무약無藥하고 소병小病은 혹유약或有藥이라.” 대병이 있고 소병이 있는데 대병은 약이 없다.
인류가 앓고 있는 병의 대세
病有大勢(병유대세)하고 病有小勢(병유소세)하니
병에는 큰 병세가 있고 작은 병세가 있나니
大病(대병)은 無藥(무약)하고 小病(소병)은 或有藥(혹유약)이라
然(연)이나 大病之藥(대병지약)은 安心安身(안심안신)이요
小病之藥(소병지약)은 四物湯八十貼(사물탕팔십점)이라
큰 병은 약이 없고 작은 병은 혹 약이 있으나
대병을 고치는 약은
마음과 몸을 편히 하는 데 있고
작은 병의 약은 사물탕 팔십 첩이니라.
祈(기) 禱(도)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至氣今至願爲大降(지기금지원위대강)이라 (5:347:2~4)
인간으로 오신 천주님이 ‘지금은 하늘도 병들고 땅도 병들었다. 그런데 약이 없다’고 하셨다. 과거의 어떤 성자도 하늘이 병들고 땅이 병들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고칠 수도 없었다. 이제 지나간 문화로는 이 천지병天地病을 고칠 수가 없다. 인류는 지금 천지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제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는가? 4절을 보면, ‘어떻게 기도祈禱해야 되나? 이렇게 새로운 기도를 해라’는 말씀이 있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라.” 인간으로 오신 천주님이 주문을 내려 주시면서 ‘기도’라는 제목을 붙이신 것이다.
상제님이 “공자·석가·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서 내려 보냈다.”라고 하셨다. 『도전』 2편 40장 마지막 구절 말씀이다. 기독교도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나의 스승님이다, 우리의 스승님이다 하여 따르게 된다’고도 하셨다. ‘그 한 사람’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판가름 날 것인지 결정짓는 하나의 관문이 된다. 삶의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공자 석가 예수를 내려 보내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 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예수가 재림한다.’ 하나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니라.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 보냈느니라. (2:40)
인류 근현대사의 진정한 서곡, 첫 새벽의 종을 울린 소리는 무엇인가? 신라 천년 왕국의 도읍이었던 경주에서 태어나고 산 최수운崔水雲(1824~1864)이란 분이 경신년(1860년), 지금부터 약 160년 전에 천주님과 직접 나눈 대화이다. 아버지 천주님의 천명이 내려온 사건이다.
그때 어떤 말씀이 있었는가? ‘수아주문受我呪文, 나의 주문을 받아라’ 하시고, ‘교인위아敎人爲我, 나를 위하도록 세상 사람들을 가르쳐라’고 하셨다. 예수 성자는 ‘아버지가 나를 보내서 왔다. 그는 참이시니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이미 본 것과 같다. 아버지와 나는 한 몸, 일체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수운에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수아주문受我呪文하야 교인위아敎人爲我하라, 나의 주문을 받아서 나를 위하도록 가르쳐라.’ 이제 아버지 세상이다, 이제 아버지가 오신다, 지금 아버지 문명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섬기도록 가르치면, 너로 하여금 장생長生케 해서 천하에 포덕布德하게 할 것’이라고도 하셨다. 동학의 ‘광제창생廣濟蒼生 포덕천하布德天下’에서 포덕이라는 것은 공자·석가·예수를 내려 보내신 아버지의 도를 펴는 것이다.
‘아버지가 인간 세상에 오신다’는 것이 인류 근현대 문명사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게 싹둑 잘려 버렸다. 변형돼 버렸다. 그래서 한국인이, 동북아에 있는 수많은 창생이, 전 지구촌 근 80억 인류가 아버지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선언한 것이 인류 근대사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 얼마나 황당한가!
불교 믿는 사람들이 석가 부처를 3천 년간 믿어왔는데, 결론은 도솔천 천주님, 미륵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 있는 부처님, 미륵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 미륵불상이 있고, 미륵불의 고향 김제 금산면 금산사金山寺에 미륵금상이 있다. 그 미륵불이 동북아 이 조선 땅에 오셨다. 그 미륵부처님을 모시는 주문이 바로 시천주 주문이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인류가 앓고 있는 병
지구촌 인류는 어떤 병을 앓고 있는가? 인간이 앓는 병을 선천 종교에서 나름대로 말하고 있다. 불교 같은 경우에는 업業, 카르마Karma를 말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와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영혼이 어둠에 갇혀서 업을 짓는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 배우기 위해서 인간과 접촉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그게 업이다.
그런데 업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깊이 쌓이면서 제2 인성을 만들고 습성을 만들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업을 짓게 한다. 이 업이 남을 위하고 도덕적이면 미래에 밝고 좋은 운수를 받는다. 그러나 남을 못살게 굴고, 저만 잘되려고 남을 속이고 뒤통수치는 사람은 그것이 제2 천성이 된다. 그 나쁜 습관에 스스로 갇힌다. 마약을 하는 사람은 왜 못 끊는가? 밤에 늦게 자는 사람은 왜 그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묵은 기운이 몸에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묵은 습성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 몸이 따라서 망한다’고 경계하셨다. 혁신적인 사고, 의지로 강력하게 결단하지 않으면 묵은 습성을 벗어날 수 없다. 개꼬리를 대통에 3년을 넣었는데 마지막 날 빼는 순간 다시 꼬부라지더라는 말이 있잖은가.
마음 고치기가 죽기보다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저 생긴 대로 살다 만다. 그만큼 마음 닦기가 어려운 것이다. 마음을 닦는 법을 기본 가르침으로 삼는 것은 불법이다. 불법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가? 팔정도八正道라든지, 사성제四聖諦라든지,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라든지 중중무진重重無盡한 가르침이 있잖은가. 인간이 뿌려놓은 이기적인 삶에 의해서 자연도 파괴되고, 국가 이기주의 때문에 세계가 어지럽게 됐다. 그런데 이치로써 해석만 할 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저 에덴동산, 천국의 동산에서는 발가벗고 살아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소도蘇塗의 생명나무가 있었고 선악의 나무도 있었다고 한다. 선악의 나무는 지식을 추구하고 이성적인 삶을 살면서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이브가 원죄原罪를 지었다고 한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여성을 악마화한 사건이라 한다. 모든 인간은 그 원죄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 성자를 보냈고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서 전 인류의 죄를 대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 이슬람권이 기독교보다 더 커져 버려서 ‘유럽의 비극’을 말하고 있다.
지구촌의 문화 대세에 볼 때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이 정보산업사회에서 많이 아는 사람과 문맹자가 공존한다. 물이 병들어서 인류 삼분지 일 이상이 그냥 병들어서 죽고, 선진국에도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암에 걸려서 죽는다. 자연이 병들고 공기가 오염되었다. 제주도도 미세먼지가 심해서 밖에 나가지 못한 적이 있다. 지상에 천국, 유토피아는 없다.
기도의 핵심은 모실 시侍 자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 문제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새롭게 인식하고 해결해야 되느냐?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상제님이 ‘너희들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그 법방을 내려 주셨다. ‘시천주 조화정’, 천주님을 모시고 조화 세상을 여는 것이다. 기도의 핵심은 모실 시侍 자다.
인류 근현대 문명의 대혁신 과정에서 볼 때 그 위대한 새 출발은 동학, 동혁혁명이다. 그동안 공자·석가·예수를 근본으로 했다. 공자·석가·예수가 문명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천주 아버지께서 그걸 바꾸라고 하셨다. 공자·석가·예수를 내려 보내셨는데 환부역조換父易祖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일부 목사는 조상신에게 지내는 제사도 우상숭배라고 못 지내게 한다. 만 년에 이르는 인류 전통 가치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제우야, 나의 주문을 받아서, 천하창생이 나를 위하도록 가르쳐라. 아버지를 직접 만나도록, 아버지와 하나가 되도록, 아버지를 받들도록 가르쳐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새 세상의 문을 여는 포덕천하를 이루면 ‘여역장생汝亦長生’, 너도 영원히 산다고 하셨다. 이것은 최수운 대신사뿐만 아니라 온 인류에게 하신 말씀이다. ‘수아주문 교인위아’를 가슴에 새기고, 써서 집에도 걸어놓아야 한다.
두리봉에서 보신 깃발 공사
『도전』 4편 55장을 보면, 상제님이 전주全州에 있는 두리봉斗里峯에 가셔서 공사 보신 내용이 있다. 상제님이 오봉이, 육봉이, 칠봉이에게 깃대를 들게 하셨다. ‘오봉이부터 나서라’고 하셨다. 기旗를 만들어서 기를 들라고 하셨다.
이번에 남북통일로 들어가는 경계에서 통일의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들이 있다. 상제님의 진리 군사, 도체 태을랑 사령관들이다. 남북통일의 새 역사가 열리는 공사가 바로 이 배너, 깃대를 만드는 공사인데, 정말로 신비롭다. 두리봉, 오봉, 육봉, 칠봉이 있는데 칠봉은 북두칠성을 상징한다.
깃대를 든다는 것은 바로 ‘나의 사명, 위대한 과제를 이제 각성했습니다. 저도 육임 조직을 짰습니다’라는 말이다. 대장군이나 천자가 직접 나서서 전쟁을 할 때 깃발을 든다. 기를 드는 의미에는 전진, 사명감, 승리, 확고한 자신감이 복합되어 있다.
상제님이 9년 천지공사의 마지막 해인 기유년 3월 3일, 삼월삼짇날에, 의통도체를 실제로 조직한 일꾼들이 남북통일이 되는 개벽상황에 직접 현장에 투입되는 공사를 보셨다. 하나님이 칠성에서 딴 박 세 개를 허리에 차고 전주 옥거리 사정射亭에서 보신 공사다. 그날 상제님이 태극 형상의 옷을 입으셨다. 한쪽은 붉은색, 한쪽은 푸른색인 옷을 입으셨다. 그때 상제님이 하나님의 막내아들 도수를 받은 복남이는 당신님과 똑같은 옷을 입어야 된다고 하셨다. 김형렬 성도는 오행으로 말하면 북방 태극수太極水를 상징하기 때문에 검은 옷을 입었다.
남북통일을 이루는 주역을 내시는 공사
남북통일이 실제 이루어지게 하는 주역들에 대한 공사이자, 개벽이 1차 끝나고 나서 도체사령관들이 받는 은혜, 영원한 축복에 대한 공사가 『도전』 5편 184장에 있는 공사다.
상제님께서 순창 농바우에 계실 때 조선 국운 심판 공사를 마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미수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의 일만 이천 고물에는 녹(祿)줄이 붙어 있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는 겁살(劫煞)이 끼어 있나니 이제 그 겁살을 벗겨야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김형렬 성도에게 어떤 예식을 하게 하셨는가? 신원일과 김광찬 성도를 데리고 구릿골로 가서, 열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청수 한 동이씩 길어서 스물네 그릇에 나누어 놓고 밤에는 칠성경을 스물한 번씩 읽으며, 하루에 모실 시侍 자 4백 자씩 써서 집 벽에다가 붙이라고 하셨다. 세 사람이 열흘 동안 4백 자씩, 1만2천 자다.
이 공사에 따라서 세계 인류에게 진리를 가르칠 1만2천 명 도통 대군자, 대성인이 금강산 1만2천 봉에 응감해서 나온다. 1만2천 명 대성자, 대성녀가 나오는데 천지 어머니 태모님도 후천 대불大佛 공사를 보셨다. 석가불이나 과거 성자들보다 훨씬 도가 높은, 진리의 경계가 높은 대성자, 대성녀, 후천 대불, 부처님들이 나온다. 앞으로 세계문명을 통일하기 위해서 이런 대공사를 보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물을 보는 거울과도 같은, 진리를 깨달아 진리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눈동자가 약했다. 그것이 바로 우주관, 우주 일 년 이야기다. 우주에서 인간 농사를 짓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지구 일 년 사계절에 초목 농사를 짓듯이, 우주는 인간을 내고 길러서 거둔다. 그리고 문을 닫아 휴식기를 갖고 다시 봄에 농사를 시작한다. 그게 바로 우주의 봄여름과 가을겨울 이야기다. 선후천 개벽 이야기다.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의 직계 조상들이 나타난 것은 이번 우주년의 봄이 시작된 5만 년 전이다. 우주의 일 년은 129,600년이니까 열둘로 나누면 10,800년인데 그때마다 소개벽이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10,800년쯤 전에 지금의 문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보통 11,000~12,000년 전까지로 잡는다. 그것이 역사학에서 말한 신석기 문명이다.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한 것이다.
저 청원淸原 같은 데서 1만2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쌀이 나왔다. 그래서 1만 년 전부터 인간의 집단사회, 작은 왕국들이 싹 트기 시작했다. 최초의 나라는 9,200년 전의 환국이다. 거기서 동양문화가 나오고 서양문화도 나왔다. 환국이 인류 문명의 큰 자궁이었다. ‘석유환국昔有桓國’, 옛적에 우주 광명의 나라 환국이 있었다.
그리고 선천 여름 철 후기를 향해 오면서 인류 문명이 점점 발전했다. 인류가 많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고 서로 얽히면서 전쟁을 했다. 전쟁을 하면 적당한 타협은 별로 없다. 무수한 희생을 치르고 원과 한을 맺는다. 그 원한이 축적되어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참상은 바로 척신隻神이 일으키는 바이다. 남과 맺은 원한 관계를 척隻, 악척惡隻이라 한다. 그래서 척이 없어야 잘산다. ‘무척 잘 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상제님이 ‘내가 공자·석가·예수를 내려 보내서 앞으로 오는 개벽 세상을 준비하게 했는데, 석가와 공자가 알고 했으나 원억寃抑의 고를 끄르지 못했다’고 하셨다. 누구도 원한을 실제로 끌러내는 해원의 도를 펴지 못했다. 석가와 공자, 예수 성자가 전쟁의 역사를 끌러낼 수 있는, 진정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 가르침이 없다. 그냥 ‘사랑해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신의 사랑 아가페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가? 그걸 하면 대덕大德인데 그게 안 되는 영역이 있다. 용서가 안 되는 영역이 많다. 지구촌에서 일어난 전쟁이나 지역 분쟁이 대개 종교전쟁이었다.
석가는 앞으로 도솔천 천주님이 오실 때 ‘여당귀의汝當歸依하라’고 했다. 무조건적으로 미륵님, 도솔천 천주님을 모셔야 된다는 것이다. 그분의 도법을 받아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고, 새 세상을 맞이한다. 미륵님 용화낙원 조화 세상에서 산다.
기독교의 결론은 ‘하나님 아버지가 오셔서 천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이 가까워왔나니 마음을 고쳐라’고 한다.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이게 무슨 뜻인가? 천국이 2천 년 전에도 손에 닿을 듯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오셔서 아버지의 나라, 당신님의 천국을 건설한다는 것을 2천 년 전에 선언한 것이다.
1만2천 대성자·대성녀는 도체 태을랑 사령관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 도법을 만나서 아버지의 천국을 직접 건설하는 일꾼이 되는 것이 바로 1만2천 명 출세 공사다. 아버지의 천국을 건설하는 주역이 금강산 1만2천 신령한 봉우리 기운을, 천지 기운을 받아서 나온다. 그 1만2천 명이 바로 새 세상을 여는 대성자·대성녀로, 후천 큰 부처님으로 출세한다.
상제님이 선천 세상 원한의 역사를 끌러내시기 위해서, 우주의 모든 신명계를 통일해서 새 역사를 통치하는 사령탑, 조화정부를 구성해서 거기서 세계 정치판 세운공사世運公事를 보시고, 또 상제님의 도통맥을 받아서 진법의 맛을 보는 진리의 참 종자를 내는 도운공사道運公事를 보셨다.
상제님이 모실 시 자를 써서 붙이는 공사를 행하게 하셨는데, 신원일 성도가 싫은 기색을 띠었기 때문에 신원일 성도 대신 이도삼李道三 성도가 구릿골로 갔다. 모실 시 자를 하루에 4백 자씩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자를 붙일 때, 글자를 쓴 종이와 종이 사이에 조금의 틈이 있어서도 안 되고 종이가 겹쳐도 안 되는 것이다. 상제님이 열흘 뒤에 오셨는데 1만2천 자를 쓴 종이가 아주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조화도통을 받는, 바로 남북을 통일하는 주역, 천지 도체 태을랑 사령관들이 협력이 안 되거나, 도를 닦으면서 서로 질시하거나, 기강을 깨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1만2천 명이 천지의 마음으로, 진정 일심으로 개벽기에 실제 투입될 의통도체 사령관들을 길러낸다.
평안도 성천成川에 있는 강선루降仙樓는 어떤 누각인가? 허미수許眉叟(1595~1682)라는 사람이 선도仙道 계열인데, 신선들을 모시고 선도를 연다고 누각을 세웠다. 고물이라는 것은 누각 바닥에 깔아놓은 판, 마루판이다. 그게 1만2천 개나 되었으니까 동명관東明館 앞에 있던 강선루는 아주 큰 누각이었다. 그런데 그 고물에 녹줄이 붙어 있다.
1만2천 명의 신선이 앉는 자리에는 영원한 생명 녹이 붙어 있고, 금강산 1만2천 봉우리에는 겁살이 끼어 있다. 왜 그런가? 금강산에는 ‘팔만구八萬九 암자’라 해서 봉우리마다 암자가 있는데 상제님이 선천의 부처 기운을 전부 없애셨다. 그래서 북한에 공산주의가 들어가서 암자가 없어졌다. 금강산에 실제로 가보니 입구 쪽에 조그만 절 하나가 있었지만 빈집이었다.
이어서 『도전』 5편 185장을 보면, 상제님이 구릿골에 이르셨는데 김갑칠 성도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염소 한 마리를 사오라’고 하셨다. 염소를 메고 오니까 “너 소 한 마리 메고 오느라고 욕봤다.”라고 하셨다. 염소는 동물분류학상으로 솟과에 속한다. 솟과에는 소, 들소, 물소와 영양, 양 따위가 들어 있다.
상제님이 신미생辛未生으로 오셨다. 상제님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전 지구촌 인류의 정신을 하나 되게 하는 미토未土, 10토 역할을 하신다. 축미丑未가 합덕하는 이치 때문에 상제님이 소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천개어자天開於子 지벽어축地闢於丑’이라는 이치도 있다. 이 지구의 땅 기운은 축시丑時에 열린다.
상제님이 그 염소를 잡아서, 당신의 성체를 상징하는 양의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찍어서 모실 시侍 자 위에 쭉 발라 나가셨다. 그 핏물이 흐르니까 “이 형상이 무엇과 같으냐?”라고 물으셨다. 그때 김갑칠 성도가 기가 막힌 말을 한다. “아라사 병정 같습니다.” 그러자 상제님이 “아라사 병사가 내 병사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개벽의 실제상황에서 터질 전쟁과 관련된다. “난의 시작은 삼팔선에 있으나 큰 전쟁은 중국에서 일어난다.”(道典 5:415:4)라는 말씀이 있다. 전쟁이 터지면서 병겁이 들어온다. 그래서 전쟁이 금방 끝나게 되는데, 『도전』에 그 공사가 나와 있잖은가.
모실 시 자는 상제님 법신과 하나 되는 의미
우리는 이 모실 시 자의 근본 뜻을 잘 알아야 된다. 이 모실 시 자 공사에 따라서 1만2천 명 도통군자가 남북을 통일하는 주역으로 출세한다. 이 주역들은 칠성사령관이기 때문에 전부 별을 단다. 의통조직을 강력하게 제대로 짜고 진리 교육을 잘해서 별을 여러 개 다는 사람도 있다. 이 별은 세간의 장군처럼 몇 년 달다가 승진 아니면 예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 5만 년 동안 영원하다. 칠성 도수라는 것은 이런 큰 축복을 내려주는 것이다.
인간으로 오신 천주 아버지의 생애를 제대로 깨닫고 상제님, 수부님의 진리 심법을 체득한 사람들이 실제 행동해서 도체사령관이 된다. 모실 시 자는 상제님의 법신과 하나 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제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천지의 마음으로, 참된 일꾼의 마음으로 모셔야 한다. 공자·석가·예수라는 아들의 시대를 넘어서 아버지의 도를 만나고 아버지를 섬겨야 한다.
세 명의 성도가 열흘 동안 하루 4백 자씩 1만2천 자를 쓴 것은 지구촌을 통일하는 상제님의 도군 조직 문화를 상징한다. 주역에도 천하를 통일하는 3대 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천화동인괘天火同人卦[䷌]다.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그 아래에 진리 태양이 떴다. 온 천하 사람에게 천주님을 믿으라고, 인간으로 오신 도솔천 천주 미륵님을 믿으라고 하는 괘다. 동인은 모든 사람을 내가 믿는 진리로 동화하게 하는 것이다.
북경 사거리에 가면 국가에서 경영하는 동인당同仁堂이라는 약방이 있다. 거기는 한 가지 동同 자, 어질 인仁 자를 썼다. 우리가 이번에 동인당同人堂 당주가 돼야 한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통일문화 역사, 남북통일의 역사 주역이 되어야 한다.
도체사령관이 되는 길 육임도체 조직
여기 제주도의 어떤 곳은 초기 6백만 보천교 시대에 주민의 2/3까지 상제님을 섬겼다. 오늘 제주도장에 모인 일꾼들이 그 부흥의 역사를 각성해서 들고 일어나야 한다.
태을주를 읽으면 조상이 내려오는 걸 본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참모습을 본다. 마음 세계도 들여다보고, 저 한라산이 흙덩어리가 아니라 어떤 신이 누워있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우주 만물의 참모습을 보는 조화 주문이 태을주다.그래서 상제님이 ‘천지조화 공부 태을주로 포교하라. 태을주로 천명을 이룬다’고 하셨다. 앞으로 시두가 대발하면 태을주를 읽어야 살아남을 수가 있다.
모든 도생이 다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대오각성大悟覺醒해서 도체사령관이 되도록 육임도체를 짜자. 올해 열심히 해서 도체 한 조 내지 두 조 이상을 짜겠다는 맹세를 새롭게 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여 보자.
이번에는 뿌리를 모르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는 모두 뿌리 기운으로 되는 것이다. 뿌리를 깊이 볼 수 있는 사람은 큰 열매를 맺는다. 뿌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은 열매가 약하다. 그래서 뿌리와 열매 즉 조상과 조국의 역사, 인류의 시원 역사와 창세 역사, 현대사와 삶의 모습을 함께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는 『도전』 공부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선천의 모든 역사 문화, 진리 원전의 최종판인 『도전』 공부를 열심히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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