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후략)
이상은 충북 옥천 태생의 시인 정지용의 〈향수〉이다. 시어의 조탁과 대상에 대한 묘사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정지용의 이 시는 노래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를 소리 내어 읽다보면 제목 그대로 우리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면서도 고향, 근본을 생각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의 서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동(東)쪽은 생기가 샘솟는, 생명의 시작이면서 고향과도 같은 방향이다. 바로 이 생명의 기운을 듬뿍 받아 한해 농사가 잘 되기를 경농(耕農)의 신인 신농(神農)씨와 후직(后稷)씨에게 제사지낸 장소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다. 바로 ‘선농단’(先農壇)이다.
그동안 답사를 서울의 서쪽을 위주로 다녔는데, 이곳은 민족의 시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역들이 많아서 그런지 비장함과 한스러움이 있었다. 반면에 서울의 동쪽을 둘러보면서는 평안하면서도, 새로운 약동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우리 생명의 뿌리를 생각하게 하는 보은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곳이 많은 것 같았다.
선농단은 어떤 곳인가
한양 조선의 수도인 서울의 동쪽은 야트막하다. 한양을 풍수지리학상 볼 때 동쪽에 해당하는 낙산이 서쪽에 해당하는 백호인 인왕산에 비해 낮은 형국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우리 비보풍수(裨補風水) 사상에 의해 동대문의 현판을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길게 써서 부족한 기운을 보완하기도 했다.
동대문 일대를 포함한 지역인 한양의 동교(東郊)는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흥으로 가는 **점이기도 하고, 태조 자신의 능묘(건원릉)도 동교 끝에서 조성되어 있다. 또한 조선의 마지막 능묘(고종의 홍릉)도 동교가 끝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동교는 뿌리에 대한 인식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이 동대문 밖 용두동 일대는 홍릉천, 성북천, 정릉천 등에서 내린 물줄기가 지나고 있어 예부터 ‘물맛 좋은 지역’으로 이름나 있다. 여기에 중랑천 일대의 비옥한 땅은 살찐 어미의 젖처럼 창생들에게 생명의 먹을거리를 일궈주었다. 바로 이 벌판 중심에 선농단이 있다.
선농단은 ‘선농제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뜻이다. 선농단에서 이루어지는 ‘선농대제’(先農大祭)를 지내는 장소, 즉 제터(祭基)라는 이름을 딴 제기 역에서 내려 안암동 로터리에서 종암초등학교 올라가는 다소 언덕진 곳에 선농단이 위치해 있다.
선농단과 선농대제, 그리고 설렁탕
선농단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단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선농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소급된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에서는 입춘 뒤 선농제를, 입하 후 중농제를, 입추 후 후농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성종 때 와서 신농씨와 후직씨를 제향한 것으로 보이고, 이후부터는 선농제만 지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선농제를 지내는 대상인 ‘신농씨’가 바로 ‘선농신’으로 인식됐다.
조선에 와서는 경칩 뒤 길한 해일(亥日)을 골라 제를 올렸다. 이 때 제물로는 쌀과 기장, 고기는 소와 돼지를 통째로 날것으로(血食) 올렸고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사 후 근처 친경지에서 왕이 직접 밭가는 시범을 보이는 친경례(親耕禮)를 지냈다 한다.
이 때 수고한 조정대신과 일반 백성들에게 소를 잡아 국말이 밥과 술을 내렸는데 그 국밥을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탕先農湯’이라 했고, 이게 닿소리의 이어 바꿈(자음접변) 현상으로 인해 현재 우리가 아는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선농단 일대에는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 보임으로써 천하지대본인 농업의 시작과 소중함을 알리는 의식을 행한 적전(籍田)이 있었다. 이 적전에서 행하던 의례[籍田禮]는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이어져 왔다. 융희 4년인 1910년 경술년 5월 5일에 마지막 선농제가 지내졌는데, 그 전해인 융희 3년 융희제가 쓴 〈친경가〉를 잠깐 살펴보자.
“융희 3년 춘 4월 5일이라 선농단하 동적전 친임하시와
천하대본 농사로 세우모야 만민이 표준으로 미시는 장가
삼천리강산 이리로 개간(開墾)일세 농상(農桑)증(增) 호구(戶口)증(增)…….”
이 선농단에서는 선농제 외에도 가을에 왕이 벼를 벼는 행사라든가, 기우제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던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 민족말살정책으로 중단되었고, 선농단 자리에는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사범대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 원형이 훼손되었다.
이후 선농제는 1979년 제기동의 뜻있는 주민들의 조직으로 치제(致祭)를 지내다 1992년 이후부터 동대문구가 중심이 된 국가행사가 되었다. 원래는 경칩 후 첫 해일(亥日: 길한 해일이라 해서 길해吉亥)에 지내던 것을 현재는 곡우에 지내고 있다.
현재 선농단에는 사방 4m의 석축단과 제를 지내는 장소와 천연기념물 240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남아있다. 몰지각한 일부 시민과 청소년에 의해 석축이 훼손되고, 천연기념물 보호 차원에서 현재는 특별한 행사때 외에는 개방하고 있지 않다.
선농단의 주인 신농씨와 후직씨
그렇다면 여기서 경농의 신이라 해서 선농단에서 제를 올리는 신농씨와 후직씨는 어떤 인물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신농씨는 전설상의 제왕이고, 후직씨는 중국 주나라의 시조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황오제와 고대 하상주 왕조에 이르는 문화를 면밀히 살펴보면 이들은 중국민족과 별 관련이 없는 우리 배달 조선족이 현 중국대륙을 경영할 때의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상세한 사항은 개벽실제상황 184쪽 표 참조)
사실 신농씨에 대한 온전한 모습은 우리 고구려 벽화 속에 살아 있다. 지안(集安)에 있는 고구려 오회분 4호묘, 5호묘 벽화를 보면 소머리에 오른손에 벼이삭을 든 신농씨의 모습이 나온다. 또한 삼실총에는 소 얼굴에 제비 옷을 입은 신이 하늘을 날고 있으며 한손에는 풀, 나무, 혹은 무기를 들고 있고, 머리 근처에 태양이 떠 있기도 하다. 우리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신화적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생동적인 신농씨에 대한 묘사나 그림이 없다. 이는 자기네 조상과 직접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소의 머리를 한 신이 농업을 가르치다
흔히들 신농씨를 묘사하길 소의 머리 형상 또는 용의 머리 형상을 한 인물로 한 손에는 벼이삭 또는 백초를 맛보는 데 사용했다는 채찍을 들고 있다. 신화에서 신의 이름은 그 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특징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신의 업적들을 잘 나타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염제 신농씨는 배달국 8세 안부련 환웅천황의 신하인 소전씨(유웅국의 임금)의 아들이다. 염제 신농씨는 강수(姜水: 즉 기수岐水로 지금의 산시성 봉상현 북쪽 기산岐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감)에서 태어나 성을 ‘강姜’이라 하였다 한다. 이 강 씨 성은 현존하는 성씨 중 가장 오래된 성의 시원이다. 성씨를 가졌다는 것은 고대에도 문명화된 집단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염제 신농씨는 최초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붙는다.
문화, 문명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경작(耕作, 耕田)이듯이 수렵채취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을 시켜준 이가 바로 신농씨였다. 당시에는 경작지가 없었기 때문에 산이나 들에 불을 질러 화전을 일구는 농사가 선행되었다. 즉 인류 첫 농사는 화전농사였다. 그래서 신농씨의 앞에 붙은 염제(炎帝) 또는 열산씨(烈山氏)는 바로 이 화전 농업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고 농사의 신(神農)이라는 명칭도 최초로 농업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또한 신농씨의 얼굴이 소머리로 묘사된 것은 우경농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농씨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쟁기와 보습 등의 농기구를 만들었다. 이후 소를 이용해 쟁기를 끌어 고랑을 만들었고 사람은 이곳에 씨를 뿌리는 일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이 쟁기를 사람이 끌다가 조금 지나서는 작은 동물들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가 끌었다. 소가 쟁기를 끄는 일은 20세기 후반까지 변치 않은 농법이다. 소는 농부 10여 명의 힘을 발휘하면서 신에 버금가는 역할을 했다.
또한 신농씨는 인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착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경농의 시작과 함께 의약의 시초가 된 것이다. 즉 약을 발명하였고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 신농씨에게는 의약과 관련된 전설이 많은데 그 대강을 보면, 백초를 맛보아 독초를 가려내고, 중독된 독을 회복하기 위해 차를 처음 마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독초에 의해 중독돼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전설로는 단장(斷腸)초를 먹어서 산채로 장이 끊어지는 고통 속에 죽었다고 하는 기록들이 나오는데 이는 모든 인류를 위해 스스로를 헌신한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한의학에서는 신농씨를 의약의 창시자로 추존하고 있다.
여기에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태양이 머리 위 정 중앙에 올 때 지정된 장소에서 상품거래를 하고 일정시간 후에는 해산하게 하는 교역(置市)을 최초로 하게 하였다 한다. 즉 경제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장이란 형태를 최초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듯 신농씨는 인간이 사는데 반드시 필요한 복록(먹을거리: 경농과 시장 설치 등)과 수명(의약 발명등)에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내려준 동방의 성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장자는 신농씨 시대를 ‘태평성대요 걱정이 없는 세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장자』외편 거협胠篋편 참조)
신농씨의 후손들, 강태공, 후직씨
신농씨는 현존하는 인류 성씨의 시원인 강(姜)씨의 시조이다. 원래 가장 먼저 생겨난 성씨는 풍(風)씨였지만 그 맥이 이어져 내려오지 못했다. 가을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고자 동방의 조선 땅에 강세하신 증산 상제님의 존성(尊姓) 또한 강(姜)씨다.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신농씨이기에 그 후손을 자처하는 이들도 많고 실제 그 후손들도 많다. 대표적 인물로는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보좌하여 은나라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서주왕조를 세운 태공 여상이 있다. 강태공은 후에 지금의 산둥반도를 다스리는 제(齊)나라를 봉토로 하사받았다. 그 외 베트남 등지에도 염제신농씨의 후손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선농단에 같이 배향된 후직씨의 어머니 역시 신농씨의 후손으로 강원(姜嫄)이다.
후직씨의 초기 이름은 기(棄:버릴 기: 후직씨의 탄생 설화는 고구려 추모대왕과 유사하다. 자세한 사항은 『사기』「주본기」참조)로 어릴 때부터 삼과 콩 따위를 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는 요임금 시대로 기(棄)는 농업에 관한 직책을 맡아 크게 흥하게 했으며, 이로 인해 주 왕실의 성인 희(姬)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이 후직씨의 15대 손이 바로 주나라 문왕이다.
한해 농사를 마감하며 보은의 기도를 올리다
올해도 어느덧 한 해의 농사를 거두는 추수의 시간이 다가왔다. 유래 없는 폭우로 인해 흉년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농사짓는 일은 생산 활동이기도 하면서 기원의 행사이기도 하다. 농부들은 신농씨와 땅을 지키는 신에게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노동요를 통해 자신들을 위로하고 씨 뿌리는 들판을 축복했다.
농사는 천지의 신과 인간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하늘과 땅, 씨앗, 기후와 농부 사이의 쉼 없는 대화인 것이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하늘의 따뜻한 양기를 받아 싹이 터 오르면, 기름지고 습한 지기는 이를 품어 뿌리마다 흙속에서 긴 발을 곧게 드리우게 한다. 여기에 인간이 정성스럽게 가꿀 때 잎사귀는 땅 위로 뾰족한 끝을 내밀면서 움터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한 줌 뿌린 씨앗들이 구덩이마다 천배의 낟알로 되돌아온다. 이렇듯 곡식 포기를 받들어 밥 한 그릇을 짓는 일은 결코 사람이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닌 천지와 더불어 살림을 하는 일이다.
선농단 향나무를 바라보며 기원해 본다. 생명의 뿌리인 조상에 대한 보은 의식과 농사를 짓는 법을 알려 인류문명 발전에 기여한 신농씨와 후직씨에 대한 보은의 마음을 지니게 해달라고. 천지에서는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조화로써 지어주시고, 이를 정성껏 가꾸고 거두는 농부의 수고로움으로 인해 우리가 생존할 수 있음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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