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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도사님 말씀/강연회

지금은 천지의 시간의 틀이 바뀌는 대개벽기 (LA강연회)

by 알라뷰 소녀시대 201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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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천지의 시간의 틀이 바뀌는 대개벽기 (LA강연회)

 

 

체험으로 근본을 꿰뚫어야
 

우선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주말이 되면 시간 내기가 무척 어려운데, 이렇게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증산도의 ‘다가오는 대개벽 문화의 실상’을 듣기 위해 오신 이들에게, 우리 상제님 태모님의 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축복으로 여러분 모두 대개벽의 실상에 대해, 단순히 문자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온몸으로 한 소식 듣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일생일대의 계기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앞서 우리 종도사님께서 증산도 진리의 전체 틀을 잡아주시고, 또 대경대법한 핵심 몇 가지를 쉽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금 전 종도사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다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앞으로 오는 문화는 인간세계와 신명계가 하나가 되는 문화다.” 곧 ‘신인합일神人合一의 문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주론을 통하지 않고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이해 차원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근본을 꿰뚫지 않고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신도神道를 부정하고 신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데, 인간 세계와 신명계가 하나 되는 문화가 온다는 걸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고도의 이성주의, 과학주의, 물질주의 문화의 경계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개벽 문화의 내용에 대해, 그리고 진리의 구성 체계에 대해 전혀 해답이 안 나오고 있는 겁니다. 
 
오늘은 부담 없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짤막짤막하게 끊어서 정리해 보도록 하겠어요. 
 
아까 엘에이(LA)도장 신도들이 오늘 신문을 갖다주는데, 거기에 증산도 개벽 강연회에 대한 광고가 잘 나와 있었습니다. 그 타이틀이 ‘세상이 변합니다.’입니다. 
 
‘지금의 이 문명이 본질적으로 바뀌는데, 앞으로 개벽문화는 어떻게 오는가? 또 개벽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는 것인가?’ 
 
종도사님이 이에 대해 결론을 안 내려주셨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오는 실제 개벽 상황과 그것을 극복하는 문제에 대한 상제님의 도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개벽은 가을천지가 열리는 것
 
먼저 개벽이란 무엇일까요? 
 
개벽은 결론적으로 하늘과 땅의 질서가 바뀌는 것입니다. 천지의 이법이 바뀌는 겁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신앙을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가령 내가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부처를 믿느냐 안 믿느냐, 내가 마음을 닦느냐 안 닦느냐, 내가 선한 행위를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개벽이란 이 우주의 이법, 대자연의 변화의 틀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요새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과학 용어로 이렇게 문명의 틀이 바뀌는 걸 무엇이 바뀐다고 하죠? 그 술어가 무엇입니까?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시간 질서가 바뀌는 겁니다. 좀더 과학적이고 지성적인 표현을 하자면, 천지의 시간의 틀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쉽게 얘기하면, “지나온 인류의 전 역사 과정은 봄여름의 선천 세상이다. 그 동안의 모든 자연과 문명, 역사, 인간의 삶의 문제라는 것은 선천 변화였다. 그런데 앞으로 선천이란 우주의 봄여름철이 끝나고 여름철 말에서 가을로 들어간다. 가을 문화가 온다. 가을철 천지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자연과 문명, 그리고 인간 삶에 연관돼 있는 대변혁의 핵심 문제입니다. 한마디로이 가을천지가 열리는 것입니다. 
 
 
동학의 후천개벽 사상
 
‘개벽開闢’은 열 개 자, 열 벽 자입니다. 본래 태초에 이 천지가 탄생한 사건을 일러 ‘천개지벽天開地闢’, 또는 ‘벽천개지闢天開地’라고 하죠.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동방 조선 문화에서는, ‘개벽’을 서양문화의 창조적인 사건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문명과 인간이 총체적으로 개벽되는 자연개벽, 문명개벽, 인간개벽의 문제로 확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체계를 세웠습니다.
 
19세기에 동학에서는 종교적으로 “앞으로 후천개벽이라는 대변혁이 온다. 헌데 후천개벽은 단순히 천지의 시간만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 천지를 주관하시는 주재자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다. 상제님이 인간 세계에 직접 개입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주의 주재자께서 인간 세계에 개입하신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앞으로 오는 문명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지구촌에 있는 모든 인종이 크게 한번 개벽해서 총체적으로 정리되는 대변혁이 온다.’는 겁니다. 그것을 “십이제국 괴질 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라고 했죠. 
 
십이제국이란 전세계를 의미합니다. 당시 전세계는 열두 개의 커다란 제국주의 국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전 지구촌에 괴질병이 들어와서 인간 씨종자를 추리게 된다. 그런 실질적인 문명 개벽이 있다.’는 말입니다.

정역을 밝힌 김일부 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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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정역』의 김일부(1826∼1898) 대성사가 “지금까지의 변화는 선천 주역周易의 변화다. 앞으로 정역正易 시대가 도래한다.”고 했죠. 
 
『주역周易』은 서양 사람들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어요. 『주역』을 영어로 ‘이칭(The Yi-Ching), 변화의 책(The Book of Change)’이라고 합니다. 『주역』은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자연과 문명, 그리고 인간 삶의 문제를 도형화한 것입니다. 
 
‘지나온 선천 세상의 변화는 주역의 변화다. 그런데 앞으로는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 남자와 여자, 또 인간과 신이 전부 정음정양으로 조화된 관계, 하나 되는 변화로 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것을 몰랐습니다. 종교계에서도 모르고 철학계에서도 모르고, 영능력자들도 모르고 현대 과학자들도 모릅니다. 이 우주의 근본 틀이 바뀌는 원리를 모릅니다. 
 
그것을 일부 대성사가 “지금까지의 선천 주역 세상이 마무리되고 정역 세상으로 간다.”고 밝힌 거예요. 
 
이것을 프린스턴 대학에서 신학교수로 있던 이정용 박사가 서양문화에 조금 전했죠. 그는 『정역正易』을 영어로 ‘코렉트 체인지(Correct Change)’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학자들은 대부분 ‘라이트 체인지(Right Change)’라고 번역합니다만, 바를 정 자 바뀔 역 자, ‘바르게 바뀐다.’는 의미죠.
 
가을로 들어갈 때 자연과 문명의 틀이 바뀐다
 
그러니까 선천 봄여름 세상에는 생장 분열 운동을 한다는 겁니다. 
 
인간도 봄철에 태어나, 많은 인간들이 초목에 이파리 열리고 꽃피듯 생장 운동을 지속해 갑니다. 
 
그런데 여름철 말에서 가을로 들어갈 때는 초목의 이파리가 떨어지고 열매를 맺듯, 인간도 어떤 삶의 궁극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실적인 역사 변화 과정이 이대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름철 말이 되면 인류 문명의 틀이 바뀝니다. 인류 문명의 모든 구석이 우주의 가을철로 들어가는 개벽운동과 더불어 그 본질이 바뀌어 버립니다. 이것이 선천 종교에서 말한 종말론의 내용이라 할 수 있죠. 
 
기독교의 「계시록」에도 있지만, 불교의 종말론은 그 스케일이 더 큽니다. 「월장경」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말법 시대에 들어서면 태양도 달도 그 빛을 볼 수 없게 되고 별들의 위치도 바뀌리라.”
 
이것은, 때가 되면 석가부처의 마음 닦는 도리로는 더 이상 세상을 가르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인간이 성숙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인간은 더 본질적인 가르침을 요구하는데, 그것을 충족 못 시킨다는 거예요. 구도자의 답답한 마음, 진리에 대한 갈급증을 만족시켜 주지 못 한다는 말입니다.
 
서양의 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한 사람인 영국의 화이트헤드는 ‘인생은 만족해야 산다. 만족을 하면서 인간도 자연도 문명도 창조적 전진을 한다.’고 했습니다. 
 
헌데 그의 철학의 결론도 자연과 문명의 틀이 바뀌는 가을개벽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통일의 새 문화권으로 진입하는 전기점
 
우리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요? 
 
바로 여름철 말 분열의 극기에서, 천지만물이 성숙, 통일되는 조화의 새 문화권으로 들어서는 우주사적인 전기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전환기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난 백 년 동안 상제님 천지공사로써, 지금까지 지구촌에 등장한 다양한 동서 문화의 통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즉 인구 문제라든지, 환경 문제라든지, 남녀의 인권 문제라든지, 민족 문제 등이. 
 
그런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성숙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란 뭐냐? 나의 삶의 목적이란 뭐냐?’ 하는 걸 깨치고 그 목적을 실현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어떤 권력 있는 자리에 올라가 세속적인 것을 만족시킨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요? 
 
한마디로 가을천지에 들어가기 위해 사는 겁니다. 앞으로 지구촌의 새로운 통일 문화권에 들어가서, 가을기운을 받아 내 생명이 성숙되기 위해 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궁극적인 깨침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죠. 그것은 궁극적인 진리를 만나 그 진리를 생활화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좀 추상적이죠?

우주 일 년의 주기
 

그럼 개벽의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 우주의 가을개벽은 여름이 지나면 자연히 가을이 오는, 그런 변화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지구에서 초목 농사짓는 지구의 일 년 변화와 우주에서 인간 농사를 짓는 우주의 일 년 변화는 그 근본 법칙은 동일하지만 내용이 다르죠. 
 
그런데 이 우주의 목적이란 결국 봄여름, 그리고 가을겨울이라고 하는 생장염장, 춘하추동으로 영원히 지속하는 겁니다. 이 순환 변화는 끊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증산도의 우주론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道典 2:49:1)
 
 
우주는 본성적으로 낳고 기르고 거두어 폐장을 하고 쉽니다. 그리고 나서 또 다시 우주 일 년으로 둥글어 갑니다. 
 
그러면 우주 일 년의 한 주기는 얼마나 될까요?
 
이 우주 일 년은 지구년으로 볼 때 약 13만 년이죠. 정확하게 12만9천6백 년인데, 이것을 한 주기로 인간을 낳아서 기르고 거둡니다. 
 
현대 천체물리학이나 지구과학에서도 이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네이쳐(Nature)』지 인터넷 홈페이지의 최근 정보를 보면,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오는 주기는 약 12만6천 년이다.”라는 자료가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자들도 우주의 빙하기가 오는 사이클을 12만 년대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수치가 거의 비슷하죠. 
 
또 영문 『개벽 매거진』을 보면, 사람 몸 속의 기혈, 음과 양의 맥 도는 것도 하루에 12만9천6백 회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즉 호흡과 맥박의 하루 평균 수치가 도합 12만9천6백 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녹祿을 취하는 초목 농사짓는 지구 일 년 사계절도 12만9천6백 도입니다. 지구는 하루 360도 자전하는데, 그것이 일 년 동안 다시 태양을 안고 360회를 돌기 때문입니다(360×360 = 129,600도).
 
그러니 사람과 지구 일 년과 우주 일 년의 생장염장의 순환 주기가 다 똑같이 12만9천6백 수 아닙니까? 
 
이것은 누가 조작한 게 아닙니다. 동양의 상수학으로 들어가면, 이 문제는 너무나도 방대하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도 며칠은 얘기해야 합니다. 
 
 
동양문화의 뿌리, 태호 복희씨 
 
이 동양문화는 5천6백년 전에 우리 한민족의 조상인 태호 복희씨가 천하天河에서 받아 내린 하도河圖라는 그림 한 장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태극太極이니 팔괘八卦니 주역周易이니 하는 것이 거기서 나왔죠. 
 
그런데 지금 이 동양의 고대사가 완전히 날조되어 중국사와 일본사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문화의 뿌리인 한민족의 역사가 엉뚱하게도 중국사 밑에 가서 붙어 있죠. 지금 서양의 지식인 쳐놓고 동양 고대사의 실상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한민족은 원래 동양의 정신문화, 우주론의 기초를 처음 체계화시킨 민족이죠. 그런데 20세기 초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약 40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의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일본인들이 일본 천황의 특명으로 한국의 고대사 책 20만 권을 불질러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핵심 비밀이 담겨있는 주요 서적은 일본 황실 도서관인 정청원에다 감춰 놓았죠. 
 
이런 사실은 한평생 정청원에서 그 문서를 직접 읽고 해독하며 족보를 연구하다가 나온 한 학자가, 죽기 전에 밝힌 내용입니다. 그에 의하면 “일본의 왕들은 그 뿌리가 거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다.”라는 겁니다. 
 
헌데 그런 비밀을 전해 주면, 며칠 생각하다 그냥 흐지부지 잊어버리고 맙니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거나 돈 안 생기는 일은 안 하거든요. ‘이것이 내 인생의 근본 문제다, 진리의 뿌리깊은 틀을 보는 문제다, 진정한 도를 찾는 문제다.’ 이렇게 고민하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단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동양문화 우주론의 뿌리는 태극, 팔괘입니다. 흔한 말로 음양 오행이죠. 그런데 그것이 5천6백 년 전에 하도라고 하는 상수학의 그림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인데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오.” (道典 5:303:1) 하신 겁니다. ‘마땅히 인류 문명의 아버지, 철학의 아버지는 태호 복희씨인데 무슨 일로 도 닦는다는 자들이 부처 노래만 부르느냐? 왜 너희 뿌리, 인류의 뿌리를 모르고 나무아미타불이나 찾고 참선이나 주장하느냐?’는 말씀입니다. 
 
무슨 퀴즈 게임처럼 ‘서양철학의 아버지’ 하면 ‘탈레스’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런데 동양문화의 아버지, 전 인류 문명의 정신사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면 아는 사람이 없어요. 한국 사람부터 모릅니다. 왜? 역사를 잃어버려서입니다. 뿌리 역사를 잃어버리고 거짓말 역사를 배운 겁니다. 
 
이렇게 우주원리의 체계를 공부하다 보면 참, 울분을 느껴서 잠 못 자는 문제가 생겨요. 
 
사실 이 대우주의 변화원리, 동양문화의 핵심 체계, 그 정수를 가르쳐 주는 곳은 천지에서 증산도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의 천명, 가을개벽을 아는 것
 
미국에서는 샌프란시스코라든지 이곳 서부지역이 동양문화가 들어오는 관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여기 엘에이(LA)에는 정신세계, 치유(힐링)와 명상에 대한 책을 취급하는 ‘보디트리’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이 있습니다. 
 
헌데 거기 가서 찾아봐도, 실질적으로 이런 문제를 다룬 책이 단 한 권도 없습니다. 결국 혼자서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는다.”고 하신 상제님 말씀처럼, 이렇게 직접 만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선천 문화를 다 뒤지며 방황을 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만족을 못한다.” 이런 사람만이 상제님 진리를 찾는 겁니다. 
 
앞으로 개벽이 옵니다. 
 
이 여름철 말에서 가을이 될 때는 단순히 자연의 변화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 우주를 주재하시는, 실질적으로 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개입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 이렇게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제님이란 분이 진짜 하나님이냐? 야,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못 받아들이겠다. 내 머리에는 기독교적인 하나님만 꽉 찼는데, 상제님은 너무 인간적이다. 우리는 몇 천 년 동안 그렇게 안 배웠다. 마귀야 썩 물러가라.” 
 
하지만 동양의 유교문화를 들여다봅시다. 
 
유교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천명 사상天命思想입니다. 
 
“하늘에서 나에게 진정한 명령을 내려주었다.”, “나는 하늘의 명령을 받아 산다!” 이런 사람만이 진짜 인간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의 천명은 무엇이겠습니까? 
 
가을개벽 소식을 아는 겁니다. 지금 이 우주 안에 거대한 대변혁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천명을 내리는 분, 상제님
 

우리나라 김수환 추기경이 “유가에서 말한 천명이란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이다. 유교의 천天 사상과 기독교는 통하는 게 있다.”고 합니다. 그 해석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유가의 천명 사상을 깊이 들어가면 무엇이 있습니까? 
 
‘하늘에서 명령을 내리는 하나님이 바로 상제님’이라는 겁니다. 
 
『서경』을 보면, 상제 문화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서경』은 유가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 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태산泰山 꼭대기에는 지금도 ‘옥황전玉皇殿’이 있습니다. 제왕이 되면 누구든 그 곳에 올라가 천상에 계신 하나님,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고 나라 살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상제님! 제가 즉위를 했습니다. 신고를 올리겠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래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서 ‘천자天子’라 불려 왔죠. 
 
그러므로 ‘천자’와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말하는 ‘신의 아들’이 통하는 겁니다. 예수 성자가 한평생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상제님은 통치자 하나님
 
유교의 역사는 그 근원으로 들어가면 상제님의 역사입니다. 
 
상제上帝님은, 신神의 이중성 가운데 이 대우주를 존재케 하는 존재의 근원으로서 신이 있는데, 바로 그 신도를 다스리는 실제적인 인격신 하나님,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입니다. 
 
기독교 신구약 66권의 마지막 부분인 「계시록」에 보면 ‘백보좌 하나님’으로 나타나죠. 사람 모습을 하고 천상 궁궐 보좌에 앉아서,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도 요한에게 직접 천명을 내리십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고.
 
미국에서 기독교 종말론에 관한 서적으로 무려 천만 권이나 팔린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의 끝에 살고 있는가?』라는 책입니다.그 저자가 “나는 기독교 문서에서 가장 무서운 내용은 백보좌 하나님의 심판 사건이라고 본다.”고 합니다.
 
‘흰 보좌 위에 앉아 계신 하나님(God at the White Throne)’은 곧 동양의 도 세계에서 말하는 ‘호천금궐의 흰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God at the White Throne in the Golden Palace in Heaven)’입니다.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도 천상 보좌에 앉아서 직접 신도 세계와 자연과 인간 역사를 통치하시는 인격신 하나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천지 질서가 바뀌어 개벽이 되는 모습을 직접 본 것입니다. 그러고서 이런 시를 남겼죠. 
 
“나는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예전의 하늘과 땅은 모두 사라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지 질서가 바뀌어 신천지로 들어가면서 인간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대변혁의 과정을 본 겁니다. 하지만 그는 영적으로 보았을 뿐 이법理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없었죠. 기독교에서는 또 그걸 해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문서에는 사적으로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요. 
 
 
진리 문제는 이법과 신도를 동시에 보아야
 
그러나 진리 문제란 신의 문제, 신도 문제만 갖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자연의 합리적인 이법만 찾는다고, 이치만 많이 안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과학자나 철학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이치, 질서(order, principle)를 찾아 헤매어 왔습니다. 이게 과학의 역사요 문명의 역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 문명사란 우주 속에 있는 궁극의 이법을 찾아 그것을 도식화하는 과정이죠. 
 
화이트헤드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도식화할 수 있는 큰 통일의 법칙을 찾는 것이 철학의 과제다. 그러나 철학은 궁극적으로 이것을 이루지 못한다. 왜? 하나는 인간의 언어의 한계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이성의 한계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이게 다한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도 종교도 마찬가집니다. 신의 문제나 또는 어떤 이법 문제만 가지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서양문화의 뿌리인 2천5백 년 전의 그리스 문화를 보세요. 당시 철인이나 지성인들은 ‘자연 속에는 신성과 이법이 공존한다.’고 하면서 그 조화 속에서 진리를 추구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서양에서 『서구 정신의 열정(The Passion of the Western Mind)』이란 멋진 책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서양문화의 뿌리 정신을 보면 자연의 신도神道, 신성神性과 이성적인 면을 동시에 보려고 했다. 이것이 깨져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진리를 보는 원칙과 안목이 훨씬 더 성숙했던 거죠. 
 
그런데 그 후로 그게 깨지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편협해졌단 말입니다. 과학에 빠진 사람, 종교적으로만 빠진 사람, 또 철학적으로만 빠진 사람, 사변적으로 논쟁만 하는 사람, 이런 식으로 돼 버렸죠.


진리의 기본 구성 틀, 이신사理神事
 

나는 상제님 진리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체계를 세워서, 세 글자로 얘기합니다. “상제님 진리는 ‘이신사理神事’의 틀 속에 전부 정리된다.”고 말입니다. 
 
하나는 이 우주가 태어난 이법입니다. 리理죠. 그런데 리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신도가 중간에서 개입을 해야합니다. 신도가 다리를 놓아줘야 해요. 그리고 신을 거쳐서 세 번째가 사事입니다. 사란 사건(event), 역사(history)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우주의 진리 체계는 ‘첫째, 이 우주가 태어나 둥글어 가는 우주의 법칙과 둘째, 하늘과 땅과 인간과, 인간 역사의 결론으로 열리는 우주의 속세계, 즉 우주의 신명세계와 셋째, 이법이 현실로 구현되는 인간 역사, 곧 인사’로 구성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이신사, 세 단계의 틀로 둥글어 갑니다. 이理에서 신神에서 사事로! 이신사,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깨야 진리의 기본 틀을 알게 됩니다. 천지 이법에다 신도세계를 밑바탕으로 깔고, 현실 인간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신명이 된다
 
그런데 궁극으로 가면 ‘신명神明’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알아야 진리가 다 풀립니다. 이 신명세계를 얘기하는 곳은 증산도밖에 없어요. 선천 문화에서는 부분적으로밖에 말하지 못했습니다. 신명세계에 대해 편협했기 때문이죠. 
 
이 우주 안에는 인간으로 살다 간 신명들이 있습니다. ‘신명’ 하면 그냥 신이 아닙니다. 밝을 명明 자를 붙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신명이 되는 겁니다.
 
사람을 다른 말로 인간人間이라고 하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사이 간間 자를 붙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몸은 땅 속에다 묻고 영체는 몸을 떠납니다. 이 영적 존재(spiritual entity)를 한자 문화권에서 ‘신명’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뱃속에서 아이가 석 달 됐을 때 지웠다든가 일곱 달 됐을 때 유산을 했다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신명이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그 실례를 하나 들어보죠. 
 
우리 어머니가 아이 열 셋을 낳았어요. 그런데 힘들게 살아오면서 큰형하고 쌍둥이 동생 하나, 아홉 달 돼서 사산되어 나온 애 등 해서 동생 셋이 죽었습니다. 그래 내가 몇 년 전에 천도식을 해주었습니다. ‘좋다! 내가 한 번 해원을 시켜 주겠다.’ 하고, 나이에 맞추어 제일 좋은 옷과 구두, 양말, 손수건, 속옷, 모자를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이름표에 집 주소까지 써서, 좋게 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나는 한 번 상을 차려주면 한 일주일 정도는 계속 해줍니다. 
 
해가 넘어갈 무렵에 내가 정장을 하고 그 앞에서 주문을 읽었습니다.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그 때 내가 가장 궁금히 여긴 게 뭐냐 하면, 아홉 달 되어 사산된 애가 과연 올까, 과연 그 영이 있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밥숟가락을 잡아보지도 못했으니 젖병을 줘야 합니다. 그래서 젖병에다 우유를 타서 상 왼쪽에 놓았습니다. 나이 많은 쪽을 오른쪽으로 해서 나이순으로 놓았죠. 왜냐하면 먹다가 서로 맛있는 것 먹으려고 싸우거든요. 
 
그러고서 주문을 읽는데, 아직 햇볕이 창문으로 비치고 있었습니다. 헌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겁니다. 주문 읽은 지 5분쯤 되어 신명들이 감응을 하는데, 그 아홉 달 먹은 애가 온 거예요. 
 
어떻게 왔냐 하면, 우리 어머니 비서인 듯한 젊은 여인이 데리고 와서, 서서 그 애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어요. 
 
이게 신도 세계, 신명의 세계입니다.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신명의 눈이 떠져야 
 
이 천도식은 서양에는 없는 문화죠. 천도식 문화가 참 중요합니다. 
 
이 영적 세계(spiritual culture, spiritual world)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백만 시간 천만 시간 들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슬프게 죽은 사람, 편안치 못한 신명을 직접 편하게 모시는 방법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불교문화에서는 이 천도식 문화를 잘못 이끌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49일 정도 해주고 말아버립니다.
 
신도神道는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신도는 우리와 계속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상은 천상에서 살고 있습니다만, 그 영의 세계는 우리 내면의 공간 세계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시카고에 있는 한 나이트 클럽에서 화재가 일어나 80여 명이 불타 죽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는 한국에서 지하철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새카맣게 타 죽었습니다. 그건 말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미쳐서 막 뛰며 어쩔 줄 모릅니다. 피붙이가 죽으면 인생 헛사는 겁니다. 인생농사 헛짓는 거란 말입니다. 
 
그럼 그렇게 죽은 신명들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들을 어떻게 해원시킵니까?
 
누가 됐든지, 사람이 죽으면 우주의 속세계, 우리의 의식 세계, 영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우리 마음의 세계로 들어간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과 의사 소통을 하려 한다거나 그들이 영으로라도 살고 있는지를 알려면, 그 영적 공간에 들어가 봐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것은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내 부모가 됐든, 형제가 됐든 내가 아끼는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무리 우주 여행을 하고 달나라를 왔다갔다 하는 세상이 되어도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그게 뭘까요? 
 
나의 마음의 눈, 신명의 눈이 떠져야 합니다. 
 
그 길이 수행입니다. 결론적으로 수행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본질적인, 내면적인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왜 도를 찾아야 하는지, 왜 수행을 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이 대두되는 겁니다.
 
이렇게 더운 날, 더욱이 소중한 토요일 오후 시간에 도담을 들으려고 여기에 앉아 있는 이유가 뭡니까? 여기에 뭔가가 있기 때문 아닙니까?상제님이 오신다
 

상제님이 오십니다!
 
선천 우주 변화의 이치를 밝힌 『주역周易』의 결론이 ‘상제님이 오신다.’는 겁니다. 『주역』 「계사전」에 보면 “제출호진帝出乎震, 상제님이 동방으로 오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2천5백 년 전에 공자가 팔괘를 방위적으로 풀면서 “진방震方, 동방 땅에서 하나님이 오신다.”고 한 겁니다. 이 ‘제帝’는 하나님 제 자입니다. 하나님, 곧 상제님을 말합니다.
 
연변에 사는 한국 동포들에게 “우리가 믿는 분이 상제님이란 말야.” 하면 본능적으로 “오! 샹띠!” 그럽니다. 중국사람의 머릿속에는 신이나 하나님이란 개념은 오직 ‘샹띠’밖에 없습니다. ‘상제上帝’를 중국식으로 ‘샹띠’라고 발음합니다.
 
‘상제님’ 하면, 그 속에는 서양적인 ‘가드God’를 포용하면서 동시에 인격신으로서 우주를 통치하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주역』의 결론이 ‘제출호진’이라면 불교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미륵경」을 보면, 석가모니가 “내 진리는 3천 년 만에 종지부를 찍는다.”고 했죠. 그런데 내가 동서양에서 이것을 강조하는 중들을 못 봤습니다. 
 
석가는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아들 라훌라, 수석제자인 가섭, 그리고 군도발탄, 빈두타에게 그것을 고백합니다. 또 “이 뒤에 미륵님이 도솔천 천주님으로 계시다가 인간으로 오신다. 너희들은 그때까지 열반에 들지 말고 윤회를 거듭하다가 장차 오실 미륵님으로부터 도를 받으라.”고 합니다. 아, 불교의 목적은 열반에 드는 건데, 자기 제자들에게 한다는 말이 “열반에 들지 말고 미륵님이 오실 때 그 분을 만나서 그 분의 도법을 받으라.”는 겁니다.
 
그럼 그 미륵의 도법이 무엇입니까? 
 
「화엄경」에 보면 “부모와 친척과 여러 사람들을 거두어 성숙케 하시려는 것이니라.” 이렇게 나옵니다. 여기서 ‘성숙’이라는 말이 나오죠. 그러니까 이것은 ‘미륵님이 오셔서 성숙한 인류 문화를 여는 새 진리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앞에서 불교와 유교, 기독교를 예로 들었는데 그 결론이 무엇이겠습니까? 
 
‘천지 질서가 바뀌는 때, 즉 가을개벽으로 들어갈 때 이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이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어 그 근본 문제를 모두 끌러 주신다.’는 겁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 원과 한
 
“그럼 인간의 근본 문제라는 게 뭐요?” 
 
이에 대해 상제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이제 신명(神明)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혀 사정(邪正)을 감정하여 번갯불에 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가 어려우리라.”
 
참 놀랍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상제님은 ‘인간으로서 하고 싶은 일을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분통이 터진다.’, 즉 ‘원과 한을 맺는다.’고 하십니다.
 
때문에 우리 증산도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질 문제와 인간의 고통과 그릇된 역사를 끌러내는 방법이 선천 문화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것은 마음 닦는 문제나 원죄론 같은 도덕성 문제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현실적인 인간의 생리와 삶의 조건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루고자 하는 것, 그게 선한 일이 됐든 악한 일이 됐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원과 한을 맺고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사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교통사고, 화재, 또는 이라크 전쟁 문제 등 그 배경을 보면 전부 신명이 끌고 들어가는 겁니다. 
 
이번에 대구 지하철에서 시너를 뿌리고 불지른 사람을 일부에서는 정신병자라고 하는데, 사실 그는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전문가들도 보복 심리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보복하려는 신명이 그 사람한테 붙어서 “야! 불질러, 불질러!” 해서 그가 그 짓을 한 거죠. 
 
결국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적 사건은 원과 한을 맺은 신명이 사람에게 붙어서 보복하는 것입니다. 가령 자기 조상이 사람을 많이 죽였다든지, 또는 출세하기 위해 누구를 모함했다든지 병신을 만들었다든지 하면 그렇게 됩니다. 사람이 **서 신명이 되면 그걸 다 알죠. 
 
 
죽는다는 건 신명으로 태어나는 것
 
그럼 우리가 죽는다는 게 무엇일까요? 
 
사람은 일반적으로 생장염장이라는 자연 질서를 마치고 나면 죽음의 질서로 들어갑니다. 죽음도 중요한 자연의 질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명으로 태어난단 말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가 인간으로 살았던 전 생애를 반성합니다. 
 
『티벳 사자의 서』라든지 『이집트 사자의 서』를 보면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을 ‘중음계中陰界’라고 하죠. 이 중음계를 한국의 전통적인 신교문화에서는 ‘명부계冥府界’라고 합니다. 
 
이 명부문화는 불교문화가 아닙니다. 칠성각이니 삼신각이니 하는 것도 불교, 서양 기독교, 동방의 유교, 도교 문화가 들어오기 전, 원래부터 있었던 우리의 전통적인 근원문화, 뿌리문화, 원형문화입니다. 신교神敎죠. 
 
신교는 동서양 문화의 뿌리입니다. 여기서 유불선 기독교가 뻗어 나왔습니다. 
 
이제 봄여름을 지나 성숙의 단계인 가을을 맞이해서 상제님이 직접 인간 역사에 들어오십니다. 그리하여 동서의 뿌리문화를 드러내 주시고, 여름철 문화가 성숙하여 열매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 길이 바로 상제님의 해원解寃 상생相生의 도道죠.

원과 한을 맺은 신명들
 

그럼 해원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이 살다가 원과 한을 맺고 죽으면 그 신명은 원신寃神이 됩니다. 원통할 원 자, 원통함을 품고 사는 신을 말합니다. 헌데 그 신명이 착한 경우는 다행이지만 큰 원을 맺고 “내가 꼭 보복을 하겠다.”고 하면, 반드시 사고를 일으킵니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가 얼마입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5천 년 전, 고고학적으로 소급해서 일만 년 전까지 우리 문명의 역사로 봅니다. 
 
그런데 그 역사 과정에서 전쟁 등으로 **간 젊은이들의 원과 한이 천지에 꽉 차 있습니다. 또 남에게 모함을 받아서 참혹하게 죽은 신명들도 있습니다. 사고로 불구자가 되어 인생을 포기하고 죽은 원통한 신명도 있습니다. 또 인간으로 태어나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신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건 약과다.” 이렇게 주장하는 또 다른 신명군이 있습니다. 바로 낙태아 신명들입니다. 
 
부모가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뱃속에서 죽입니다. 최근 아홉 시 뉴스에, 서울의 한 산부인과를 들러 인터뷰한 내용이 방영됐어요. 기자가 “애를 한 번 떼는 데 얼마나 드느냐?”고 물으니까 “우리 병원에서는 한 백만 원에도 해줍니다.” 합니다. 기자가 냉장고를 여니 거기에 조그만 박스가 있습니다. 애를 긁어내서 거기에 집어넣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건 그 박스에다 검은 띠를 두르고 한자로 ‘조弔’라고 써놓은 겁니다. 그걸 보고 ‘야! 참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낙태아들은 **서 그렇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산모가 너무 몸이 허약해서 도저히 애를 낳을 수 없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애를 떼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죽은 애는 영체가 멸할 때까지 보복을 합니다.
 
내가 이 얘기를 하니까, 서양에서 온 한 여성 신도가 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서양에 가서 낙태 문제를 함부로 얘기하면 큰일납니다.”라고. 
 
그런데 나는 그 결과론을 가지고 얘기하는 겁니다. 
 
‘엄마 몸이 안 좋아서, 하나님이라도 애를 떼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런 걸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또 인공유산이니 자연유산이니 어떤 형태를 가지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영체가 파괴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단 말입니다. ‘너는 나를 죽였다.’ 이겁니다. 신명은 자연自然 사산死産이 됐어도 자연에 대고 대항을 합니다. 자연에다 대고 자폭해서 자살하는 겁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인터넷 자료에 따르면, 일 년이면 약 2억1천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데, 그 가운데 4분의 1에 달하는 약 5천백만 명이 뱃속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상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뱃속 살인죄가 가장 크다.” 
 
그럼 이것이 도덕적으로 교화敎化를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입니까? 이미 그 손을 떠난 겁니다. 물론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름철 말까지는 대세가 이렇게 둥글어 가는 것입니다. 
 
결국 상제님이 오셔서 모든 인간 문제가 크게 한 번 정리돼야 새 세상을 열 수 있습니다. 
 
상제님이 오십니다.
 

상제님을 모시고 내려온 이마두 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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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까 종도사님도 말씀하셨듯이,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상제님을 모시고 내려온 분이 있죠. 
 
가톨릭 문화권에 있는 이마두(마테오 리치) 대성사입니다. 그는 1552년에 태어나 1610년에 북경 땅에서 돌아가셨어요. 중국의 북경 공산당 당교黨校에 가보면 그 후원에 마샬 신부 옆에 묻혀 있습니다. 이분에 대해 한평생 연구한 학자가 있어요. 도쿄 대학의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 교수입니다. 
 
이마두 대성사는 이태리 마체라타 시市 시장의 아들로 태어나 열아홉 살 때 출가하고 인도에서 신부 서품을 받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와서 평생을 포교하다가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이분이 무엇을 했냐 하면, 동양에 서양의 근대문명을 전하십니다. 또 동방 유교의 고전을 라틴어로 번역했죠. 
 
이마두 대성사는 인류사에서 실질적으로 동서문명의 다리를 놓은 최초의 세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히라카와 교수의 말입니다.
 
이마두 대성사는 동방에 와서 직접 유교, 불교, 도교의 경전을 공부하고 ‘아! 내가 모신 천주님이 바로 상제님이구나.’ 하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천주실의天主實義(The True Meaning of the Lord)』, 즉 ‘하나님의 참 뜻’이라는 책을 씁니다. 그 책이 실학자들을 통해 조선 땅에 들어온 뒤로 가톨릭을 ‘천주교天主敎’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천주’란 말이 거기서 나온 겁니다. 물론 ‘천주’란 용어는 불가에서 빌린 것이지만.
 
이마두 대성사는 상제님이 천주님이라는 걸 깨달은 최초의 서양인입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 같은 이는 “너희 유학자들은 늘 성리만 따지고 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해답이 없다. 그것을 주장하는, 그 자리를 다스리는 천주님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한 천주님이 상제님입니다. 
 
 
선천 깨달음의 한계

 

 
상제님은 133년 전인 서기 1871년에, 동방 조선 땅에 오셔서 31세 되시던 신축(1901)년에 만고에 없는 대 도통문을 여셨습니다. 그 도통의 경계는 과거 어떤 성자도 이루지 못한 ‘중통인의中通人義’라는 초유의 새 경지입니다. 
 
그 도통은 무엇일까요?
 
'어둠에 빠져 있는 오늘의 인간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 해야 근본적으로 새로워질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해야 궁극적인 깨달음, 도통을 얻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궁극적으로 깨치는 걸 말합니다.
 
미국의 젊은 지성인 캔 윌버를 아시죠? 그가 한번은 불교 연구를 하는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중국의 불교 역사에서 도통한 사람이 몇 명이냐?” 그러자 그 전문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천만 명 가운데 하나 깨달았다.”고. 
 
아, 중국에서는 불자 천만 명 가운데 겨우 하나가 깨졌다는 겁니다. 아니 그렇게 어려워서야 어떻게 불교를 하겠습니까?
 
그 다음 일본 불교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낫 모어 댄 어 더즌(Not more than a dozen.)” 일본의 전 불교사에서 깨달은 자가 한 여남은 명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상제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로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찰지리(下察地理)는 있었으나 중통인의(中通人義)는 없었나니 내가 비로소 인의(人義)를 통하였노라. 
 
옛 사람은 천지의 바탕 정도만 알았다는 말씀입니다. 과거 성자들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 궁극적, 보편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선천 문화의 깨달음의 열매 실상입니다.
 
상제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나의 공부는 삼등(三等)이 있으니 상등은 도술(道術)이 겸전(兼全)하여 만사를 뜻대로 행하게 되고, 중등은 용사(用事)에 제한이 있고, 하등은 알기만 하고 용사는 못하느니라. 
 옛사람은 알기만 하고 용사치 못하였으므로 모든 일을 뜻대로 행치 못하였으나 이 뒤로는 백성들도 제 앞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게 하리라.  
 
이 말씀을 보세요. ‘옛 사람은 알기만 하고 용사는 뜻대로 못했다. 조화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즉 조화권을 쥐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니 선천 종교의 역사라는 건 실패작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주의 이법이란 말입니다. 생장의 과정에서는 인간의 문화와 인간 개체가 성장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장의 말에서 성숙의 초, 대 통일의 가을철로 들어가는 우주적인 변혁기, 개벽기입니다! 
 
그래서 상제님이 오셔서 선천 문화를 정리하시는 것입니다. 

신명 해원을 위하여 신명 조화 정부를 세우심
 

헌데 상제님이 대우주의 신명계를 들여다보니, 원신寃神들이 원자폭탄의 파괴력보다 수십 수백 수천 배 더 큰 원한을 갖고 살고 있더란 말입니다. 
 
예를 들면 지금 중동의 자살 폭탄 테러, 미국의 테러 사건 문제가 있죠. 
 
 테러의 본질이라는 게 전부 원신寃神의 역사입니다. 원한 맺혀 죽은 신명들의 보복의 역사예요. 그 신명들이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에게 붙어서 그런 역사를 전개시키는 겁니다. 이것이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원신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가을철이 와도 내내 선천 세상과 똑같습니다. 선천의 연장판이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상제님이 이 신명들을 해원시키면서 개벽의 실제 상황에서 인간과 신명을 한꺼번에 정리하십니다. 그러면서 선천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 우주의 이법과 문명 질서 자체가 완전히 새로워진 새 세상을 여십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상제님께서는 새 세상을 여시기 위해 먼저 무엇을 하셨을까요? 
 
상제님은 이 대우주의 신명계를 하나로 통일하셨습니다. 우주 역사상 처음으로 신명계를 통일하시고 신명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세우셨습니다. 
 
조화정부는 우주의 통치자인 상제님의 뜻과 이상, 그리고 모든 인간과 신명의 이상적인 생각대로 역사가 둥글어 가도록 새 역사를 기획하고 조정하고 심판하는 우주 통치의 사령탑입니다. 
 
상제님 말씀을 보죠. 
 
 
이제 예로부터 쌓여 온 원(寃)을 풀어 그로부터 생긴 모든 불상사를 소멸하여야 영원한 화평을 이루리로다.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를 뜯어고치고 신도(神道)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며 상생의 도(道)로써 선경을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함이 없는 다스림과 말 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세상을 고치리라.  
 
 
조화정부를 구성하는 신명들
 
그런데 이 조화정부를 구성하는 신명들을 보면, 첫째, 문명을 열어나가는 문명신文明神이 있습니다. 종교인, 철인, 과학자 등 문명적 사고를 하고 문명을 열어가는 주역 신명들을 문명신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각 민족을 다스리는 민족의 지방신地方神이 있습니다. 
 
유대에는 야훼신, 아메리카에는 인디언 신, 그리고 나라마다 주신主神이 있습니다. 
 
서양 그리스에는 열두 신(Twelve Deities)이 있고, 인도에는 비슈누 신이 있고, 중국에는 반고씨, 일본에는 천조대신(아마데라스 오미까미)이 있습니다. 
 
지구촌 각 민족마다 그 민족의 시원 역사를 주장하는 주신主神이 있죠. 태초에는 그 주신을 하나님 또는 창조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우주가 하나로 통일되는 보편 문화 시대가 열리면서, 그 신은 태초에 우주를 창조한 신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 신은 다만 한 지역을 맡아 다스리는 지역신地域神일 뿐이죠. 
 
지금 지구촌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쟁들, 예를 들면 발칸 반도의 유고 사태, 중동 사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싸움, 인도 내분, 중국의 소수민족 문제 등이 전부 그 주신 간의 싸움입니다. 상제님은 민족의 주신을 지방신地方神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각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신이 그 민족의 최고신이죠.
 
그 다음에 각 성씨의 조상신祖上神이 있고, 아까 말씀드린 원신寃神 역신逆神이 있습니다. 
 
혁명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구족九族이 참살되어 멸문지화를 당한 신명들을 역신이라고 합니다. 이 신명들은 원한이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모든 역신을 만물 가운데 시비(是非)가 없는 별자리로 붙여 보내느니라.”고 하셨죠. 참으로 놀라운 말씀 아닙니까?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 이야기를 극화한 『브레이브 하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주인공 월리스가 영국군에게 사형을 당하죠. 그 때 항복하면 살려 준다고 마지막 기회를 주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습니다. 도끼로 목이 내리 찍히는 순간,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한마디가 있잖습니까? 
 
“프리덤(Freedom)!” 
 
자유! 그것이 지나온 선천 상극의 우주 질서 속에서 살아 온 인생의 한 가지 주제입니다.
 
 
상생으로 가려면 반드시 먼저 해원을 해야
 
봄여름철은 상극相克의 천지 질서가 만물을 다스리는 때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상극하고, 남자와 여자가 상극하고, 동과 서가 상극합니다. 그 속에서, 극을 극복하면서 상생相生을 열어나가는 것입니다. 
 
우주 역사의 목적, 자연의 목적, 인간 역사의 목적, 한 개인의 삶의 목적이 상생이란 말입니다. 살리는 거예요. 
 
특히 서양인들이 증산도의 새 문화, 새 진리를 접할 때는 이 언어의 문자적인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생相生’이란 무슨 뜻일까요?
 
‘상생’의 상相은 서로 상 자입니다. 생은 우리 상제님 말씀에 따르면, 살려낼 생 자, 남 잘되게 하는 생 자입니다. 그러니 ‘상생’ 하면 ‘남을 살린다, 남 잘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이 우주가 상생의 질서로 갑니다.
 
그런데 이 상생으로 가려면 반드시 먼저 해원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선천 상극 질서 속에서 살다 원통하게 죽어간 무수한 영혼들의 인간 문화를 한 번 크게 정리하고, 새로운 자연 질서, 문명 질서를 여는 삶의 원리, 그게 바로 해원입니다. 
 
그러므로 남하고 원통한 관계를 맺거나 남을 못살게 굴면 이번에 반드시 거꾸러집니다. 국가도 결국 거꾸러지고, 인간도 신명도 마침내 거꾸러집니다.
 
이것을 알면 개벽의 실제 상황에서 어떤 나라에서 많이 살고 어떤 나라에서 많이 죽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개벽이다』 책은, 태고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동서 역사에 전해져 온, 앞으로 오는 개벽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책입니다. 그 책 초판이 나온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번에 개정판 상권을 내면서 새로 나온 자료를 보충하였습니다. 거기 보면 기가 막힌 내용이 있어요. 
 
하권은 너무 분량이 많아서 좀 늦어지고 있는데, 한반도 통일과 개벽의 실제 상황 문제가 나오죠. 
 
오늘은 그 가운데 핵심 되는 내용 한두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매듭을 짓겠습니다.

선천 세상에서 가장 큰 원한을 품은 단주
 

개벽 상황 문제와 상제님 조화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선천 세상에서 가장 큰 원한을 품고 죽은 인간이 누구냐 하는 겁니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중국 고대 요임금의 아들 단주丹朱입니다. 
 
전통적으로 유가에서는 요임금, 순임금을 가장 이상적인 성인 제왕이라고 합니다. 인간 역사에서 모든 나라의 지도자가 본받아야 할 최고의 성인 제왕, 그 상징이 요순이라는 거죠. 
 
그런데 상제님은 요순 역사의 실상이 완전히 조작되었다고 하십니다.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丹朱)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만족(蠻族)과 이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온 천하를 대동(大同)세계로 만들자는 주장이 곧 ‘시끄럽고 싸우기 좋아한다’는 말이니라. 
 
 
상제님 말씀은 ‘요임금의 아들 단주가 가장 큰 원을 맺고 죽었다. 단주가 요순보다도 더 큰 덕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단주가 천지 대권을 잡았다면 중국 한족과 동방 조선족이 그토록 싸우지 않았을 것이며, 당시에 이미 대동세계가 건설됐을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너무 복잡하니까 추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죠.
 
 
단주의 해원 도수, 오선위기
 
그러니까 오늘날 한반도의 전쟁 위기는 결국 4천3백 년 전의 갈등의 뿌리 역사가 또 다른 양상으로 재현되고 있는 겁니다. 이걸 자세히 얘기하려면 팔관법 세운공사를 얘기해야 합니다만, 왜 하필 한반도에서 지구촌 최후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지금 미국의 정치 입안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사실 이라크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게 북한 문제다.”라고 말하고 있죠. 여기에 엄청난 문제가 있단 말입니다.
 
상제님은 구릿골 약방을 여실 때, 약장을 들여놓으시고 그 중앙에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는 글을 써 붙이십니다. 단주수명丹朱受命! 단주가 4천3백년 만에, 그 깊은 원한을 풀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 천명天命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당시 요임금은 순에게 천하를 물려주고 아들인 단주에게는 바둑판을 줍니다. 그래서 바둑을 제일 먼저 둔 사람이 단주예요. 
 
상제님은 단주의 해원과 그 후로 덧붙여져서 뻗어 흐르는 동서 인류의 원한과 갈등을 끌러 내시기 위해, 지구촌 세계 질서를 다섯 신선이 바둑 두는[五仙圍碁] 형국으로 둥글어 가도록 공사를 보셨죠. 
 
 
현하 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리나니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라.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4대 강국이 바둑을 두는데, 이 게임이 씨름판처럼 세 번에 걸쳐서 전개됩니다. 그러면서 개벽으로 들어갑니다.
 
그 첫 번째 게임이 애기판, 즉 어린애들 규모의 전쟁인 제1차 세계 대전입니다.
 
두 번째는 총각판 씨름으로 20, 30대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의 전쟁, 즉 제2차 세계 대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상씨름입니다. 그걸 상투쟁이끼리의 싸움이라고도 하는데, 실질적으로 가장 궁극의 싸움입니다. 상上이란 ‘최상의, 더 이상이 없는’이란 뜻입니다. 상씨름은 지구상에 일찍이 그 유례가 없는 최상의 싸움, 인류 역사를 마무리짓는 가장 강력한 전쟁을 말합니다. 
 
지난 1945년 을유 해방과 더불어 북쪽에 소련군이 들어오고 남쪽에 미군이 들어왔죠. 그러면서 남북이 세계 초강대국인 미소를 등에 업고 싸우는 상씨름판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지금 55년이 되어가고 있어요. 
 
일본의 패망과 상씨름

 
그런데 상제님은 이 과정에서 일본을 천지의 일꾼으로 세우십니다.
 
상제님이 백 년 전에 보신 공사가 있죠. 동양이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다 무너지는 것을, 일본에게 기운을 붙여 물리치게 하신 공사입니다.
 
 
이제 만일 서양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내가 이제 일본에게 잠시 천하통일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의 역사(役事)를 시키려 하노라. 
 
상제님은 일본에게 기운을 붙여 서양 제국주의를 물리치게 하십니다. 
 
섬나라 일본인들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늘 하나의 꿈을 꾸어왔죠.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입니다. 이게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안고 내려 온 한입니다. 
 
상제님은 바로 이 기운을 공사에 쓰셨어요. 사실 여기에는 아주 복합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상제님은 일본에게 일시적으로 천하통일지기天下統一之氣와 일월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 역사를 시키십니다. 일본이 그 침략의 열정으로 진주만까지 폭격을 하지 않습니까?
 
일본이 망한 마지막 과정을 보려면, 진주만과 히로시마에 가면 됩니다.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엘 가보면 원자폭탄이 터져서 풀 한 포기 남김없이 다 융해돼 버린 당시 도시의 참혹한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왜 일본이 망했을까요?
 
사실 일본 문화는 일찍이 조선으로부터 건너 간 것입니다. 문자만 해도 백제의 왕인王仁 박사가 일본으로 가서 천자문과 논어를 가르쳐 준 거예요. 
 
또한 근대문명은 미국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처음에 페리 제독에 의해 받아들였죠. 그러니 미국 또한 일본의 스승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스승인 미국을 쳤습니다. 
 
일본사람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배사율(背師律)에 범하는 것이므로 참혹히 망하리라. 
 
천지신명들이 배사율背師律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은 배사율에 걸려 참혹히 망합니다. 상제님께서 천지신명과 더불어 도수를 그렇게 짜놓으셨습니다. 『도전』을 보면, 일본이 조선에서 물러가는 날짜까지 나와 있죠. 
 
그러고 나서 마지막 상씨름이 붙은 겁니다. 
 
그럼 왜 한반도에서 상씨름이 일어나는 걸까요?
 
아까 서두에서도 얘기했잖습니까? 개벽의 땅이 간방이라고. 
 
동북방을 간방이라고 하고, 넓게는 동방을 진방震方이라고 합니다. 그 동방 땅에 상제님이 강세하시는데, 개벽이 되는 곳은 정확하게 동북방 간방입니다. 
 
『주역』 「설괘전」에 “간艮은 지야止也라.”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즉 ‘간방은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곳’이란 뜻입니다. 인간 역사의 최종 매듭이 지어지는 곳, 다른 말로 하면 실제 개벽이 이루어지는 땅이란 말입니다. 개벽을 제일 먼저 얻어맞는 곳, 어떻게 보면 비극의 땅이죠. 그러면서도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곳, 새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정역 시대로 들어간다
 

증산도 개벽문화 자연개벽과 문명개벽, 그리고 인간개벽을 말합니다. 지금 자연의 질서가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갑니다. 
 
아까 종도사님이 “선천은 주역 시대로 지구가 타원궤도로 돈다. 헌데 정역 시대로 들어가면서 가을에는 정원궤도로 돌아선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한 달이 30일, 일 년이 360일이 됩니다. 양력과 음력이 같아집니다. 한마디로, 음력 양력이라는 개념이 없어집니다. 달력을 잘 만들어서 어린애가 태어날 때 선물로 주면, 그것 가지고 백 년도 쓰게 됩니다. 캘린더 시스템이 바뀐단 말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개벽이란 천지의 시간 법칙이 바뀌는 겁니다. 
 
진리의 노른자, 깨달음의 눈, 깨달음의 핵이 「우주론」입니다. 이 「우주론」 내용의 결론이 「시간론」이고, 「시간론」의 핵심은 우주의 일 년 사계의 캘린더 법칙을 알아내는 거예요. 
 
즉 우주의 봄철에는 일 년이 366일이고, 여름철에는 365와 4분의 1일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거죠.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4천3백년 전 요임금과 순임금이 알아 낸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오는 가을철에는 일 년이 360일이 됩니다. 이것은 『주역』에 있는 내용입니다. 2천5백 년 전에 공자가 “당기지일當朞之日은 360이다.”라고 했죠. 
 
그런데 한평생 『주역』을 공부한 19세기 말 조선의 김일부 대성사가 “그게 바로 정역正易이다.”라고 정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때는 팔괘가 이렇게 바뀐다.” 하고 정역 팔괘正易八卦를 그립니다. 그 날 밤에 공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참으로 장하도다. 내가 그것을 하고 싶었는데 그대가 이뤘으니 이 얼마나 장할시고.” 하고 치하를 합니다.
 
앞으로 오는 정역 세상은 하늘과 땅이 정음정양正陰正陽이 됩니다. 또 남자와 여자가 정음정양 동권同權으로, 여자가 앞서가지도 않고 남자가 앞서가지도 않으면서 모든 게 조화되는 세상입니다. 
 
남녀 평등이란 건 철학적으로 볼 때 말이 안 됩니다. 이 우주에 질적 평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음양 자체가 구분되는 것이므로, 서로 조화될 수 있을 뿐입니다. 동서의 모든 명상 문화, 철학에서 하모니(harmony)를 말합니다. 하모니는 곧 조화입니다. 그걸 인권 세계에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음양 동권’이죠. 
 
이것을 상제님 공사 내용으로 보면 ‘정음정양 도수’입니다. 정음정양을 영어로 번역하면 ‘Right Yin Right Yang’이라 하죠. 그런데 번역을 해놓고 보면 한자에서 느껴지는 맛과는 좀 다릅니다. 
 
 
황극신이 들어온다
 
이제 가을개벽으로 들어가는데, 그러면 실제 개벽 상황은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요? 
 
상제님께서 “현하 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道典 5:7:1)고 하십니다. 곧 ‘앞으로 상씨름으로 선천 세상을 문 닫는다, 선천 세상은 전쟁으로 끝막는다.’는 말씀이죠. 
 
 이 지구가 하나의 문명권으로 대 통일되는 대공사가 있습니다. 바로 “상씨름이 넘어간다.”는 공사입니다. 
 
 
이 달에 고부 와룡리에 이르시어 대공사를 행하시니라.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느니라.” 하시고 …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외치시더니 이 때에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이 공사는 우주의 황극신을 불러들이는 공사입니다. 이 세계가 하나의 가족(one family) 문화가 되려면 황극신이 들어와야 된다는 겁니다.
 
지금 서양인들은 무극無極 태극太極은 알아도 황극皇極은 모릅니다. 황극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요. 이건 어떤 대 철인이라도 마찬가집니다. 오직 상제님 진리에서 처음 얘기하는 거죠. 
 
무극과 태극과 황극이 있는데, 이번에 황극신이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개벽이 일어납니다. 남북 상씨름이 불붙습니다. 그리고 남북 상씨름이 넘어갑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지 감 잡으시겠죠? 
 
요사이 전문가들도 이라크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죠. 그런데 저 백마고지를 가 보세요. 철책 담벼락에 빨간 글씨로 글을 써 놓았죠. “진정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나는 이게 다 한 얘기라고 봅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멋진 얘기 아닙니까.
 
 
상씨름이 넘어간다
 
지금 실제 상씨름을 마무리하는 개벽 전쟁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게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작년에 발생한 9.11 테러 사건부터입니다. 뉴욕 쌍둥이 빌딩 폭파 사건 말입니다. 
 
지금 전세계는 이라크 사태 때문에 말들이 많습니다. 전략 전문가, 정치가, 평론가들이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써대고 있습니다. 
 
나는 요새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흘 전에 미국에 와서도 생각해 봤는데, 그 9.11 테러 사건의 참혹성은 무시될 수 없는 문제라고. 그건 엄청난 충격을 준 대사건이라고.
 
오늘 아침 뉴스에서 스페인 수상과 부시 대통령이 기자 회견하는 걸 잠깐 보았는데, “세계의 안전과 미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데에는 응답을 해준다.”고 하는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처음 문장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윌 앤써(will answer)’ 라는 내용이 있어요. 응답을 해 준다는 거죠. 아주 단호합니다. 
 
또 그 말미에서 간접적인 선전 포고를 했어요. “무장을 해제하라. 그렇지 않으면 응답해 준다!”고 돼 있죠. 테러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뿌리를 뽑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상제님 천지공사의 대세로 보면, 사실 이라크 사태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이 세계 역사를 바꾸는 최후의 불덩이는 한반도 북한 문제로 갑니다. 상제님께서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하십니다.
 
1950년에 시작된 남북 전쟁이 지금까지 휴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게 아니에요. “좀 쉬자.” 해서 샅바를 쥐고 있다가, 이제 마지막 한 판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것이 넘어갈 때가 문제입니다. 상제님 말씀을 보면 노골적인 말씀이 많이 나오죠. 결국 남북 상씨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개벽이 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가을철 숙살 기운이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괴병이 들어옵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이것이 개벽이다』책 상권을 보면, 동서고금의 모든 철인, 성자들,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사람이 괴병에 대해 한결같이 무서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서양에서 무서운 전쟁이 준비되면, 즉 대 전쟁이 일어나면 그 다음해에 어린이나 어른이나 동물들도 피할 수 없는 괴병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전세계에서 학위를 받은 언어학자, 철학박사들을 수십 명 뽑아서 ‘증산도 사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에 불문학 박사가 셋이 있습니다. 그 박사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노스트라다무스 책을 전부 조사해 봤더니 ‘장차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다.’는 얘기가 나옵니다.”라고.
 
나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록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바로 그 내용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흔히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 7월달에 개벽이 온다고 예언했다.”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불어 원본이 “1999 일곱 번째 달(L’an mil neuf cent nonante neuf sept mois)”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걸 해석하면 ‘1900, 90, 9, 7의 달’이 됩니다. ‘세뜨 므와(sept mois)’는 영어로 말하면 ‘일곱 달(seven months)’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의 과정을 얘기한 것이지 어떤 날짜를 지적한 게 아닙니다. 9와 7이라는 수를 나열함으로써 ‘어떤 과정을 통해 개벽이 온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 겁니다.
 
이걸 일본의 고도 벤(五島勉)이라는 사람이 원문을 제대로 모르고 ‘천구백, 구십, 구, 일곱 달’을, ‘1999년 7월’이라고 했죠. 『이것이 개벽이다』상권을 보면 그에 대해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개벽은 언제, 어떻게 오는가?
 
그럼 개벽은 언제, 어떻게 오는 걸까요? 
 
상제님은 이것을 백 년의 시간대로 말씀하십니다. 즉, 천지공사를 보신 해로부터 백 년의 시간이 지나면 남북 상씨름이 불붙는, 선천 세상을 문닫는 마무리 개벽의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상제님은 그것을 또 ‘사오미 개명巳午未 開明 도수’로도 말씀하십니다. 재작년, 작년, 올해, 이 사오미년이 되면 세상 사람들이 개벽에 대해 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놓고 봐도, 사시巳時는 아침 아홉 시 반부터 열 한시 반, 오시午時는 낮 한 시 반, 미시未時는 오후 세 시 반까지로 양陽의 시간대입니다. 우리나라는 동경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30분씩 늦춰서 계산하면 됩니다. 그러니 미시는 오후 세 시 반까지죠. 미시가 지나면 슬슬 해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상제님이 서울 창경궁에 가셔서 오선위기 마무리 공사를 보시면서 말씀하신 게 있죠.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다가 해가 떨어지면 바둑판 바둑알을 다 놓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입니다. 
 
이걸 풀어서 말하면, 사오미년이 지나면서 바둑 게임이 끝난다는 겁니다. 즉 한반도를 분단해 놓고 힘겨루기하던 이념 대결,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던 전쟁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러면 오선위기의 주역이 물러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미군이 철수한다는 말입니다. 
 
상제님 공사 내용 답사를 십 년 이상 이십 년 가까이 하다보니 이 미군 철수에 대해서도 별의별 말씀이 다 나옵니다. 그 상세한 내용은 여기서 생략하고,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상씨름 전쟁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당시 성도들이 상제님께 여쭙니다. “전쟁이 나면 다 죽지 않습니까?” 그러자 상제님이 “아, 병으로 막지. 시속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전쟁 상황 속에서 병겁이 터진다는 말씀입니다. 상씨름이 넘어가면서 가을철 숙살 기운, 즉 괴병이 들어옵니다. 그게 정확하게 군산 바닷가에서 들어옵니다. 
 
 
이 뒤에 괴병(怪病)이 돌 때에는 자다가도 죽고 먹다가도 죽고 왕래하다가도 ** 묶어 낼 자가 없어 쇠스랑으로 찍어내되 신 돌려 신을 정신도 차리지 못하리라. 
병겁이 들어올 때는 약방과 병원에 먼저 침입하여 전 인류가 진멸지경(殄滅之境)에 이르거늘 이 때에 무엇으로 살아나기를 바라겠느냐. 귀중한 약품을 구하지 말고 오직 성경신으로 의통을 알아 두라. 
 
이 말씀을 보세요. 괴병이 하루에 수십만 수백만을 휩쓴다고 합니다. “신 돌려 신을 정신도 못 차린다. 시렁 위에 있는 약 꺼내먹을 시간도 없다. 자식이 귀중하지만 손목 잡아 끌어낼 시간도 없다.”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다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괴병의 실체, 서신西神
 
그러면 이 괴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실 이 괴병에 대해서는 모든 성자들, 예언가들, 영능력자들도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것은 바로 서신西神입니다.
 
앞에서 전한 「우주론」에 대한 말씀과 지금 이 ‘서신사명西神司命’의 문제를 모르면,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인생을 헛산 거죠. 
 
서신사명이 무엇일까요? 
 
가을이 되면 가을의 천지기운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우주에 그 기氣를 타고 들어오는, 가을철에 생명을 성숙케 하는, 생명을 완숙시키는, 통일시키는 신이 있습니다, 서신이! 바로 그 서신이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영이 열려서 우주의 지평선을 보면, 서신이 은빛 구름 덩어리로 보입니다. 서신은 이 거대한 우주에 꽉 차 있습니다. 그걸 보면 ‘아, 저 기운으로 다 죽는구나. 저게 가을철 숙살 기운이로구나.’ 하는 걸 압니다. 
 
지구 일 년에서 가을에 초목이 열매 맺을 때 어떻게 됩니까? 숙살 기운이 들어와 서릿발이 치면서 낙엽이 다 떨어지죠? 모든 이파리가 조락凋落되고 그 과정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만약에 지구의 일 년 사계절이 봄여름만 지속된다면, 초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파리가 계속 우거지고, 꽃이 필 겁니다. 
 
하지만 봄여름은 반드시 꺾어집니다. 그래서 가을로 들어서는 하추교역기에 초목 개벽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여름철에 인간 종자가 수십 억이 우거져 있다가, 가을개벽 때는 초목의 이파리처럼 다 떨어집니다. 가을 숙살 기운이 들어올 때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죽습니다.

태을주를 읽으면 서신을 본다
 

서신西神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볼까요? 
 
가을은 방위로 말해서 서쪽이고, 서西는 오행으로 금金입니다. 그러니까 서신은 가을의 신, 곧 금신金神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을철에 들어오는 천지신명, 이를 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수행을 안 하면 이 서신을 모릅니다. 그것도 기존 문화의 공부법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상제님의 태을주太乙呪 공부만이 앞으로 오는 가을천지, 새 우주 문화 공부입니다. 
 
그래서 태을주를 잘 읽으면 서신을 봅니다. 
 
이 서신이 들어와 괴병이 터집니다. 전라도 군산에서 시작되어 두 번째는 해남, 세 번째는 인천으로 터집니다. 
 
인천에 아시아에서 제일 큰 국제공항이 생겼습니다. 괴병이 인천으로부터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무려 3년 동안 전 지구촌을 휩쓸게 됩니다. 
 
물론 미국에 괴병이 들어오는 것은 한국보다 훨씬 뒤의 일일 겁니다. 그 때 이런 얘기를 하겠죠? “야! 한국에서는 난리가 터지고 대개벽을 한단다. 역시 이민 오길 잘했다.”고. 
 
그러나 천만의 말씀! 여기 미국은 더 크게 당합니다. 
 
왜, 어떻게 그럴까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미국의 뉴에이지 문화에 들어가 보면 여러 영능력자들이 한결같은 얘기를 합니다. “미국 대륙은 반으로 갈라지고, 서부지역에는 심각한 파괴가 발생한다.”고. 그런 일이 단 몇 초 만에 일어난다는 겁니다.
 
마이클 스캘리온 같은 사람은 아예 개벽지도를 그려서 팔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말하기를 “미국 대륙은 미시시피 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갈라진다. 뉴욕도 없어지고, 해안 지역은 다 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밖에 루스 몽고메리, 폴 솔로몬 등도 아메리카 대륙이 물바다가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개벽을 천지의 이법으로 받아들여야
 
한반도의 전쟁 상황 속에서 병겁이 터져 개벽이 전개된다는 상제님 공사 내용은, 상제님 진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하면 개벽을 천지의 이법으로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느냐, 얼마나 깨져야 하느냐 하는 겁니다.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벽의 이치를 모르면 소용이 없습니다. 왜? 인생의 목적, 역사의 목적은 방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시간은 그 화살이 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갑니다. 봄여름의 지난 선천 세상은 오직 가을을 향해 가는 겁니다. 이걸 모르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헛사는 것이죠. 목적 없이 사는 거니까. 
 
그래서 괴병과 남북의 마지막 전쟁의 의미가 중요한 겁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남북의 상씨름 전쟁은 단순히 동방 한반도에 있는 조그만 남북한 두 나라의 싸움이 아닙니다. 크게는 봄여름 선천 오만 년 세상의 상극의 질서를 완전히 종결시키는 전쟁입니다. 곧 자연의 상극의 역사와 인간 문명사의 상극의 전 과정을 종결짓는 의미로서 최후의 전쟁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 역사상 가장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전쟁의 과정이 너무도 참혹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가을개벽 상황으로 들어갑니다. 
 
상제님께서 이걸 정리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함께 오느니라.”
 
앞의 병란은 병사 병兵 자고, 뒤의 병은 질병 병病 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전쟁과 병겁이 함께 온다는 말씀입니다.
 
그 괴질 병겁이 남북한을 49일, 전세계를 3년 동안 휩쓸게 되는 것입니다. 
 
 
태을주로 살린다
 
그런데 병겁 초기 과정을 좀 지나면서 지축地軸이 서 버립니다. 물리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까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지구가 궤도 수정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축이 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일본 불교계 지도자인 기다노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장차 큰 변혁이 오는데 일본 사람은 1억 3천만 명 가운데 20만 명이 산다.” 유명한 얘기죠. 이 내용은 『개벽』책 하권에 나와 있습니다. 이번 개벽으로 일본 사람 99%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 내용을 주제로 해서 20년 전에 일본사람들이 만든 영화가 있습니다. 〈일본침몰〉이라고,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 영화는 과학적인 것에 근거를 두고 만든 겁니다. 거기 보면 일본이 물 속으로 들어갈 때 그들이 부산항으로 피난을 오는데, 결국 하나도 못 살고 다 죽습니다.
또 아까 종도사님이 루스 몽고메리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여성도 참 대단한 영능력자입니다. 자기 보호신이 셋이 있는데 그 세 명으로부터 신교神敎를 받아서 전한다고 합니다. 
그는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숫자는 1만 명에 한 명을 더하여 1만을 곱한 것이다.” 즉, 일억 만 명 정도 산다는 겁니다. 그는 이처럼 상세하게 얘기하는 참 특이한 여성입니다. 묘하게도 지축 서는 과정만을 전공으로 합니다. 자고 나서 보니까 천지가 다 바뀌어져 버립니다. 그의 저서 『우리들 사이의 이방인(Strangers among Us)』을 보면, 그게 시적詩的으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 미국도 여러 개로 나뉜다고 하죠. 스캘리온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구촌 역사의 틀이 다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지구촌 인간 종자를 추리는데 그 때 무엇으로 사람을 살리느냐면, 태을주로 살립니다. 구체적으로는 상제님이 전해주신 의통醫統으로 살립니다. 

태을천 상원군님을 찾아야 산다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됐는데, 끝으로 태을주에 대한 말씀을 간단히 정리하고 매듭짓기로 하겠습니다. 
 
모두 아까 나누어 드린 책자를 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장을 넘기면 태을주가 나옵니다. 
 
태을주太乙呪 인간 역사와 신의 역사의 뿌리 되는 분을 모시는 주문입니다. 이것은 지난 날 유교, 도교, 기독교 문화의 어떤 성인이나 철인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내용입니다. 상제님이 처음으로 말씀해 주셨죠.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이 우주의 인간과 신의 뿌리 되는 하늘이 태을천太乙天입니다.
 
도교의 역사를 들어가 보면 “태고에 태을천太乙天 상원군上元君님이 계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부처가 되려면 태을천에 올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상제님은 이 태을천 상원군님 ‘하늘 으뜸가는 임금’이라고 하십니다. 상제님도 인간으로 오셨으니 조상이 있을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지구촌의 철학, 종교, 과학계와 유불선 기독교에서 도를 닦은 모든 사람들의 뿌리 되는 분, 모든 인간 생명의 뿌리 되는 분, 천지의 모든 신의 뿌리 되는 분, 그 분이 바로 태을천 상원군님입니다.
 
자연의 이법이, 가을은 원시原始로 반본返本하는 때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반드시 태을천 상원군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초목도 가을이 되면 모든 생명력이 뿌리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만일 뿌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다 말라비틀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가을로 들어가는 개벽 문화권에서 뿌리에 대한 감각이 없다? 근원을 못 찾는다? 그러면 다 죽습니다. 태을천 상원군님을 찾아야 인간도 살고 신명도 사는 겁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에이, 난 안 살란다. 남들 죽을 때 같이 죽고 말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럼 저만 죽는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내가 죽으면 천상에 있는 조상도 같이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내가 가을천지 기운을 받아 성숙한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겠습니까? 나로 인하여 나를 낳아준 조상과 선대先代가 같이 살아서, 인간과 신명이 하나 되는 가을 문화에서 생명을 이어간다는 겁니다. 
 
태을주는 상제님 진리를 체험하는 주문
 
앞으로 오는 이런 문화의 내용, 개벽 문제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명의 총체적인 문제를 천지 변화의 틀에 담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이 문화가 어떻게 뒤집어져서 새 문화권 속으로 들어가는지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구촌에 나와 있는 모든 사고思考나 깨달음을 보면, 단순히 문명의 틀을 바꾸자는 내용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자연 질서라는 것이, 우주에도 일 년이 있는데 지금 여름철에서 가을로 들어간다.”는 얘기를 못 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그런 얘기를 합니까? 인도에서 온 어떤 영적 스승이 그런 얘기를 합니까? 공자가, 아니면 석가모니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까? 
 
아무도 못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 깨달음의 빈곤이거든요.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그들이 가르쳐 주지 못한 내용, 차원이 한 단계 더 높은 궁극의 깨달음에 대해 깨줄 수 있는 새 진리, 자연과 문명과 인간의 문제를 하나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새 진리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증산 상제님의 대도 진리, 증산도입니다.
 
 
태을주는 조화가 무궁한 주문
 
이것을 체험하는 수행공부가 태을주 수행입니다. 물론 태을주 외에도 일곱 개의 주문이 있습니다. 이걸 다 알아야 하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 태을주부터 알기 바랍니다.
 
개벽기 때 생명을 살리고, 누구나 읽으면 가을기운을 받아 영대가 밝아지고 영대가 완전히 열리는 궁극의 공부가 태을주입니다.
 
 태을주에는 율려 도수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너무나 엄청난 문제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다 함께 주문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주문을 읽을 때는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주문과 하나 되어 읽으면 됩니다. 또박또박 읽다가 잡념이 사라지면, 환히 열리면서 뭐가 자꾸 보입니다. 하늘도 보이고 별도 보이고, 저 중국의 어떤 지역에서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도 보입니다. 그리고 비버리힐스에 있는 잘 생긴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소리가 다 들립니다. 
 
어느 땐가 내가 새벽 세 시에 일어나 태을주를 읽는데, 미국 록키 산맥에 있는 수백만 그루의 나무들이 서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한국말로 들려요. 물론 미국 사람이 들으면 미국말로 들립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니까 우거진 나무들이 춤을 추면서, “기분 좋지?” “으음” 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사랑 받는 여자가 애교 떠는 목소리, 코 먹은 소리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강한 바람이 쏴아 하고 부니까, 나무들이 “와.” 하고 피합니다. 내가 그걸 보고, ‘아, 만유가 다 의식이 있구나. 저런 나무에도 사람과 똑같은 의식이 있구나. 모든 게 살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태을주를 읽으면 만물 속에 있는 신성이 말하는 소리까지 다 들립니다. 태을주는 이렇게 말할 수 없는 조화를 가진 주문입니다. 그래서 상제님이 ‘무궁무궁 태을주’라고 하신 거죠. 또 ‘태을주는 여의주다!’라고도 하셨어요.
 
자, 그럼 태을주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여기 엘에이(LA)의 ‘보디트리’나 영국의 ‘와킨슨 서적’을 가보세요. 유불선의 영적 스승들이 쓴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 가운데 실질적인 수행 비법을 전한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태을주를 읽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누구도 안 가르쳐 줍니다. 수백 수천 권을 뒤져봐도 없습니다. 
 
그건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귓속말로 전하는 겁니다. 동양의 도道 공부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도를 쉽게 전해 주지 않아요. 

성경신을 다해 집중해서 읽으라
 

태을주를 읽는 방법은 성경신으로 집중해서, 깨어서 읽으면 됩니다. 깨어서 읽는다는 건, 내가 주문 자체가 되어 읽는 걸 말합니다.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내가 사운드 자체, 태을주 자체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1, 2분내에 잡념이 싹 사라지고 시원한 기운이 열립니다.
 
핵심적인 공부법을 제대로 알고 하면 공부가 빠르게 됩니다. 어떻게 주문을 읽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조상에서 죄를 많이 지은 경우 공부하는 도중에 그 척신, 즉 원한 맺힌 신명이 방해하려고 달려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운장주雲長呪를 읽으면 됩니다. 시간 관계상 운장주에 대해서는 전할 수 없으니까, 자세한 것은 도장 신도들을 통해 공부하고 책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반드시 책을 읽어야
 
이제 마무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전하겠습니다. 
 
상제님 말씀으로 보면, 지금 우리에게는 죽느냐 사느냐 두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는 길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나는 종말론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우주의 이법이 바뀌는 대 전환기에 살고 있단 말입니다. 이제 지구촌의 문명의 틀이 완전히 바뀝니다.
 
그런데 백 년 전에 상제님이 천지도수를 재조정해서, 새로운 역사의 틀을 짜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증산도를 공부하는 것은, 이 세상의 향방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의 비결서 양식이 여기에 있단 말입니다. 
 
재미있죠?
 
그런데 한국 사람으로서 여태까지 증산도를 모르고 살았다? 여러 번 뉴에이지 문화 현장에 가 봤는데도 증산도를 만나지 못했다? 한 인간으로서 이보다 불행한 게 없어요. 
 
다음달이면 상제님의 『도전』이 7개 국어로 번역되어 나옵니다. 이 새 문화가 지구촌 온 인류에게 전달됩니다. 지금부터 비로소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증산도 인터넷 영어 홈페이지(www.jeungsan do.com)도 열려 있고, 또 영어판 『개벽 매거진』 같이 쉽게 정리된 책들도 지속적으로 발간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곳 엘에이(LA)뿐 아니라 미주 지역에 있는 이들이 상제님 진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다양해지겠죠.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제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고 스스로 깨져서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서점에 가서 『도전』,『이것이 개벽이다』, 『증산도의 진리』,『우주변화의 원리』 등 상제님 진리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책들을 사서 꼭 읽어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위해 투자를 하란 말입니다.
 
엘에이(LA)에 사는 한국 동포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미국 시민 여러분! 오늘 말씀이 진정 여러분의 인생사에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참석하신 모든 이에게 다시 한 번 상제님의 축복이 내리기를 간절히 축원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의 응답
혹시 질문 없습니까? 그냥 마치면 섭섭하니까 한 분만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질의 제 이름은 사라입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증산도를 알게 되었는데요, 태을주는 여타 다른 단체의 주문과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응답
태을주는 다른 단체의 주문과 본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어요. 곧 태을주 속에는 주인공이 있다는 겁니다. 그 주인공이 누구냐면, 바로 두 번째 구절에 있는 ‘태을천 상원군님’입니다.
 
태을천은 이 우주의 어떤 영적 하늘을 말합니다. 
 
그럼 그 하늘의 주신主神이신 상원군님은 누구일까요?
 
상원군님을 알려면 먼저 상제님을 알아야 합니다. 상제님을 깊이 알면 상원군님에 대해 알게 되는데, 이것은 처음 듣는 사람들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죠.
 
상제님께서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런 대우주 통치자 하나님이신 상제님이 “상원군님은 이 우주 역사의 뿌리가 되는 분이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상원군님을 이렇게 말합니다. “상원군님은 상제님의 할아버지다. 하나님의 할아버지다.”라고. 
 
그러면 “아니, 하나님 가지고 얘기를 했는데, 하나님의 할아버지가 있다니!”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 또한 너무나 방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그래서 태을주를 읽으면, 이 세상의 모든 영적 가르침을 내려주는 근원으로부터 큰 기운을 받게 됩니다. 
 
그 기운을 그냥 에너지라고 하면 너무 싱겁고,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전 인류와 우주의 영적 존재들에게 생명의 근원적 파동을 내려주는 태을천으로부터 받는 가장 강력한 신적 에너지다.’ 
 
또한 가을로 들어갈 때는 내 생명이 가을 열매가 돼야 합니다. 그 가을 열매가 되게 해 주는 가을철의 천지 기운을 태을천에서 받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첫째, 태을주를 읽으면 영대가 밝아집니다. 그래서 금세 광명을 체험하죠.
 
둘째, 태을주를 읽으면 일체의 사고와 재난으로부터 면액免厄을 받습니다.
 
태을주를 잘 읽으면 자면서도 사고가 일어날 걸 미리 봅니다. 그건 누구도 다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면한다는 말입니다.
 
며칠 전, 우리 신도 하나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가족들, 어린애까지 태우고 가다가 중앙분리대를 받고 여덟 번이나 굴렀다고 합니다. 차는 완전히 폐차가 됐는데 사람은 아무도 안 다쳤습니다. 그게 다 태을주를 읽기 때문입니다.
 
셋째, 태을주를 읽으면 만물 속에 있는 신도神道를 봅니다. 그러면서 신도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죠. 
 
태을주는 진리 세계에 빨리 눈뜨게 하는 큰 도주道呪요 신성주神聖呪입니다.
 
넷째, 태을주는 가을개벽기에 원시반본의 도를 열어주는 주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생명의 근본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주문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 주문을 꼭 읽어야 합니다. 
 
앞으로 오는 3년 개벽의 실제 상황에서 전 인류가 “훔치 훔치”하면서 태을천 상원군님을 찾습니다. 누구도 태을주를 읽어야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이번에는 모르면 죽습니다. 개벽이란 착한 사람은 살고 나쁜 사람은 죽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에사는 길 ‘조상에서 누가 공덕을 많이 들여 자손을 밀어 넣느냐? 길을 찾게 하느냐? 그 힘이 누가 강하냐?’ 하는 것과, 현실적으로 그런 길을 찾으려는 나의 의지, 나의 정성에 의해 정해지는 것입니다. 상제님 진리를 제대로 알고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상제님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서, 가을철에 영원히 낙엽으로 멸하여 사라질 그들을 얼마나 상제님 진리권으로 인도하느냐?’ 그리고 ‘얼마나 그들을 우주의 열매가 되게 하고, 후천 오만 년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하느냐?’에 의해, 그 사람의 공력과 진정한 삶의 열매가 평가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상제님 진리를 단순히 어떤 힐링(healing)이나 주문 수행 차원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상제님 진리 그 주제가 개벽이며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태을주로 시작해서 태을주로 마무리됩니다.
 
보다 중요한 건, ‘우리는 지금 어느 때에 살고 있는가? 인간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걸 아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상제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실 상제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인생은 준비 과정입니다. 세속적으로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다 소용없습니다. 상제님 진리를 만나 개벽을 준비하고, 내 가족과 주변 사람과 함께 새 세계로 들어가는 그 날부터 실질적인 오만 년의 새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봄여름이란 생장 과정이며 성숙을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인간이 정말로 살아 볼 만한 세상은 앞으로 오는 가을 세상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의 인생을 한 번 크게 정리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각자의 인생을 걸고 진리에 과감히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자, 못 다한 얘기가 많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매듭짓겠습니다.

 

-도기133년 2월 LA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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