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대륙에서 9000년 역사와 참동학을 외치다!
한성복 / 전주덕진도장
“여기는 ‘로스엔젤레스’!”
[사진: LA도장] “여기는 천사의 도시 로스엔젤레스입니다.”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에 따라 펼쳐진 L.A.의 모습은 화려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마치 우리나라 70년대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일행들은
[사진: 헐리우드거리풍경] 강연회 다음날 L.A. 주변 관광을 했습니다. 한국교민이 많이 사는 곳에서 북서쪽으로 불과 1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렸을까? 말로만 들었던 유명한 헐리우드 거리가 펼쳐졌습니다. 극장들이 줄줄이 서 있고 거리에는 영화 캐릭터로 다양한 분장을 하고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사진을 찍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헐리우드 스타의 거리에는 유명배우들의 이름이나 그들의 손도장과 발도장을 구경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운집합니다. 세계영화산업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헐리우드 거리의 화려함 뒷면에는 정신적인 공허함이 느껴져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진: 게티빌라] 그 다음 방문지는 헐리우드에서 30분가량 이동하여 말리부 해안 언덕에 있는 게티빌라Getty Villa라는 박물관이었습니다. 게티빌라는 기원전 6500년부터 기원후 400년까지 4만 4000점의 그리스, 로마, 헬레니즘, 에트루리아 유물 등을 전시하는 전문 박물관으로 1974년 설립되었습니다. 이 박물관은 설립자 장 폴 게티(J. Paul Getty, 1892~1976)의 이름을 딴 두 박물관(게티센타, 게티빌라) 중의 하나입니다. 석유 재벌로 엄청난 자산가였던 게티는 전세계를 다니며 미술품, 골동품 등을 수집하여 게티빌라를 세우게 됩니다. 게티가 제일 아꼈다던 헤라클레스 조각상과 더불어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의 조각상과 많은 유물들을 보면서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조우하는 것 같은 아찔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뉴욕에서 진리를 전하다
[사진: 맨하탄에서] L.A.를 떠나 뉴욕 플러싱에 숙소를 정하고 다음날 이층버스를 타고 맨하튼 투어를 했습니다.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맨하튼에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맨해튼은 미국 뉴욕의 자치구 중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 허드슨 강에 있는 섬을 포함하여 본토의 몇 블록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미국에서 상업적, 재정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입니다. 국제연합본부가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역시 여기 맨하탄에 있습니다. 로어 맨해튼에는 뉴욕 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이 있는 월 스트리트가 있고 뉴스, 잡지, 책과 같은 여러 대중매체의 출판업자들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주요한 라디오, 텔레비전, 통신회사들이 이곳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다음 우리는 맨하탄에 있는 인디언 박물관에 갔습니다! 미대륙의 인디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전시하는 박물관이었습니다. 전시관을 둘러보는 중에 한 전시관 벽면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Pachamama 파챠마마 (대지-어머니)
“mother earth and light of the sun” -AYMARA-
“어머니 땅과 태양의 빛(광명)” 바로 광명사상과 아버지·어머니신앙입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 한국인보다도 더 오랜 기간 동안 한민족의 후예임을 잊지 않고 광명신앙을 고수해왔던 것입니다. 박물관 전시물 중에 친근한 물건들 절구통, 기러기, 버선, 모카신, 도자기 등등을 보면서 어렴풋이 들었던 손성태교수의 다음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한민족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태극무늬, 복식, 육아법, 전통 놀이와 악기, 지명 등 어느 것 하나 피해갈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일치했다.” <출처: ⓒ 코리안스피릿>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많은 물건들에서 미국인들에게 핍박받고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인디언들의 원혼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의 여러 전생 중 한 번은 인디언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진: 가든스위트호텔][사진: 뉴욕 유엔본부 앞] 뉴욕 대동연회장에서 10월 20일 14시 30분 환단고기 북 콘서트가 성황리에 열렸습니다. 대동연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에서 우리 교민들과 만찬을 했던 장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식전 행사때 〈청소년연맹〉에서 대한민국 애국가와 미국 애국가를 함께 합창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뉴욕 북콘서트 이틀 전 아침수행을 마치고 초대장을 준비하는데 전주덕진도장 부포정님이 초대장에 이름을 적는 것을 보고 따라서 이름을 적었습니다. 홍보하러 나가기 전에 정읍도장 수호사님, 포정님, 홍정실 성도님과 우리팀 팀장인 서수호사님이 “이번 북콘서트에 ○명씩은 꼭 초대합시다!”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네! 수호사님, 포정님이 기운을 주시는데 받아야지요! 꼭 그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홍보활동을 하러 나갔습니다.
뉴욕 북콘서트 전날 토요일 아침 수행 때에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내일 열리는 환단고기 강연회에 뉴욕도장에서 일꾼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초대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홍보 나가는 날, 그날따라 꼭 접이식 초대장을 갖고 나가고 싶었습니다. 남아 있는 초대장이 없어서 뉴욕도장에 우편발송을 했을 때 되돌아온 초대장 봉투까지 뜯어내 초대장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왜 그렇게 그 초대장에 집착을 하는지 작업하면서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와 전주에서 생각해 보니 그 초대장이 아니었다면 한 사람의 인연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을, 조상님께서 알음귀를 열어주셔서 일이 조화롭게 성사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홍정실 성도님과 저는 대동연회장 바로 앞에 있는 한양마트로 홍보하러 갔습니다. “내일 대동연회장에서 우리역사 강연회가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홍보전단과 초대장을 배포 했습니다. 마트 외부에서 부침을 파는 아주머니에게도 초대장을 드리니, 강연회가 대동연회장으로 바뀌었으니 참석할 수 있다며 ‘초대장을 놓고 가라’ 하셨습니다. 강연회가 시작되었고 접수처에 가서 초대장을 확인해보니 접이식 초대장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성복’이라고 쓰인 초대장 두 장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마트 아주머니가 친구 분과 함께 오셔서 『환단고기』 원본을 구입한 후 강연회장에 들어가셨다고 했습니다.
뉴욕에서 만난 인연
[사진: 배○○(왼쪽)님의 식당에서] 다음날 우리 전주덕진도장의 부포정님, 김용만 성도님과 저, 이렇게 세 명은 모든 일정을 접고 한양마트에 갔습니다. 그날 바깥에서 부침을 팔던 아주머니는 그 식당의 사장인 배○○ 씨였습니다. 강연회 내용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처음 만난 우리에게 마치 막역한 친구 사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린이날 노래’ 중에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을 오늘날까지 우리가 무슨 일꾼이 되며, 무슨 일을 우리가 할까? 라고 염두해 두고 있었고 또 운동장에서 전교생들이 모인 가운데 어떤 초대강사가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의 종주국이 될 것이며, 일본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하고 말한 놀라운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종종 혼자 생각으로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거지?”라고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제 강연회를 통해 우리 민족의 위대함에 감격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어원과 언어학, 한의학과 사상체질, 음식 등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뉴욕 한인사회에서 정, 재계의 마당발로 활동하고 있었고 어려운 이웃을 가장 먼저 도와주는,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여장부셨습니다.
배 사장님은 자부심을 갖고 양심을 지키며 건강음식을 스스로 개발해 교민들에게 판매한다고 하였습니다. 순대, 무지개 들깨 수제비, 현미호박죽, 찹쌀호떡을 먹었는데 한국에서는 맛보지 못한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환단고기 세미나 참여를 안내하면서, 미국사회에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말씀에 힘입어 강연회 때 인류의 원형문화, 사회, 정치, 종교의 원형문화가 우리 한민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저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레 삼신사상, 신교, 증산도까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배○○님 한인신문 기사] 한양마트는 서울의 명동과 같은 곳이며, 또 미국은 전세가 없고 모두 월세이며 그 마트의 배사장님이 운영하고 있는 한양분식점은 그리 크지 않은 식당인데 월세가 자그마치 15,000불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비롯하여 미국 땅에 살고 있는 한인들 자체가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며, 미국의 경제가 예전과 달리 너무 힘겨워 살아가는 것이 전쟁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일행이 다음날 출국한다고 하니 아쉬워하며, 시간이 되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뉴욕도장으로 갔습니다. 포정님과 상황공유를 한 후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자연스레 눈도장을 찍게 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도장에 도착하니 마침 성도님 4~5분이 있었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한수화 성도님과 다른 성도님이 “아 그 분식점요, 가끔 그곳에 가서 음식도 먹었고, 그 분식점에서 홍보하다가 혼도 났었고, 그 사장님 아주 사나운 분인데요! 어떻게 그 분의 호감을 사게 되었는지 인연이 따로 있었나 봐요! 정말 잘 되었네요”라며 반겨주었습니다.
포정님이 부재중이라서 한의원을 경영하는 박은숙 포감님과 같이 배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앞으로 환단고기 세미나와 증산도 공부를 도와줄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두 분이 나이는 있었지만 같은 여성이며, 같은 뉴욕 시민이라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또 고향이 진주, 마산이라서 진주여고가 명문이네, 마산여고가 명문이네하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배 사장님이 태을주 수행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두 분이 자주 만날 것을 약속하며 자리를 파했습니다. 배 사장님이 맛있는 식사대접을 해주셨는데 이야기하느라고 감사의 인사도 깜빡 잊어버렸답니다.
[사진: 버스투어후 1층에서] 짧은 기간 동안의 미국여행이었지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걸 통감하며 하루바삐 귀국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환경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왜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 하는지 몸소 느껴졌습니다. 미국의 햇볕은 뜨거운 것이 아니라 ‘아프게 따갑다’ 할 정도였고 썬크림, 썬글라스, 모자 등 태양관리제품이 필수품이었습니다. 음식문화 또한 전에 어느 외국인 식품학과 교수가 한국인들이 먹는 한식은 ‘신선들이 먹는 음식’이라고 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질적인 문화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교민들이, 그 교민들 속에서도 상제님 신앙을 하는 우리 증산도인들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신앙하는 것을 큰 축복으로 느끼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조상님이 동행하신 포교여행
[사진: 남편] 미국 여행을 결심하면서 저는 직장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박덕수 성도(남편)가 도장에 다녀오더니만 도장에서 수행을 하는데 신명님들이 분주히 서두르고 계시더라고 이야길 했습니다. ‘우리 도장에서 다섯 명이나 미국을 가는데 당연히 신명님들도 바쁘시겠지’ 했습니다. 원하지 않게 혼자 출국하게 되어서 인천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박덕수 성도와 통화를 했는데 “이번엔 아버지, 할아버지 두 분이 같이 가시니 힘내서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선친)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남편을 만나면서 수시로 신명으로 오셔서 늘 저희와 함께하심을 알고 있어서 놀라운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할아버지께서 동행하신다고 하니 더욱 힘이 솟았습니다(제가 이글을 다 쓰고 남편에게 읽어주는데 저의 할머니께서 “나도 같이 갔는데 나는 왜 빼냐?”고 하셨답니다. 정정합니다. 할머니도 같이 동행하셨답니다). 저는 주로 꿈에서 목소리로, 또 알음귀를 통해 신교를 받는데 남편은 주로 영상이나 알음귀로 신교를 받습니다. 남편이 저보다 더 도가 높습니다.^^
제가 출국한 날부터 남편과 김○○ 부포정님, 대포 조○○, 오○○ 신도가 도장에서 미국여행을 떠난 5명의 신도들의 무사, 무탈을 위하여 칠성경 3독씩 읽어주며 21일 정성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제가 뉴욕에서 좋은 대상자를 만난 이야기를 하며 남편에게 당신의 기도 덕이라고 하니, 자신의 덕이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싫은 내색 않고 같이 참여한 대포 여성 신도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성사될 때는 거기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사람, 현장에서 뛰는 사람, 묵묵히 기도해 주는 사람, 천지신명님, 조상 선령님들의 조력이 함께해야 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뉴욕에서 포감님께 배사장님의 조력을 부탁하고 한국에 와서는 주로 카톡으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포감님이 자기 일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장의 다른 포감님과도 공유하고 같이 배 사장님 식당에 가서 밥도 사먹으며, 태을주 CD와 진리책도 전해주고 진리 이야기도 하고 해서 배 사장님 스스로가 도장에 가서 수행을 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퇴근 후 도장에서 태을주 수행과 팔관법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배 사장님은 주위의 지인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답니다.
저와 남편도 그분이 잘되기를 바라며 정성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조상님께도 기도를 합니다. 퇴근 후 곧장 도장에서 수행하고 온 남편이 수행 중에 그분의 조상님이 오셨더랍니다. 조상님들은 음덕이 아주 많은 것 같았고 그분이 외국 가는 것을 정말 못마땅하게 여기셨다며, 당신들의 후손인 그분이 상제님 진리의 일꾼이 되게 기도를 많이 해달라며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가 한 이야기지만 ‘미국에도 신도들이 많아져서 미국의 50개 주에 도장이 다 세워졌으면 좋겠다’라고 소망합니다.
미국 여행을 떠나기 전 남편이 제가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에 태을주 수행을 열심히 해서 제가 오직 천하사만 할 수 있도록 녹을 끌러 보겠노라고 했습니다. 귀국 후에 남편이 좋은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남편이 다니는 직장과 연결된 일로 내년 봄쯤 대리점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직장일로 새벽시간에 출근을 하게 되니 돌아가신 저의 아버지가 “새벽수행을 하러 나가야 하는 시간에 출근을 하다니!” 하시며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늘 우리 주위에 계시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염려해주시는 조상님들(아버지!). 우리가 조상님들의 기도와 기대에 부응하는 일꾼들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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