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용 / 증산도 본부
상제님을 신앙하는 일꾼들에게 8·15 광복은 아주 특별하다.
우리 한민족이 8·15 광복을 맞기까지, 그리고 앞으로 세계의 주인으로 우뚝서기까지
그 이면에는 천리(天理)와 신도(神道)를 바탕으로
역사전개의 이정표를 짜신 증산 상제님의 숨결, 천지공사의 비밀이 숨어 있다.
국립묘지에서 만난 겨레의 얼
국립 대전 현충원의 호국관에 가보라. 거기 중키에 낯설지 않은 얼굴로 서있는 독립군 장교와 독립군 사병의 밀랍인형을 만날 수 있다. 아주 빛 바랜 낡은 군복 차림새이다. 장교는 그런 대로 때깔나는 운동화 모양의 군화를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병은 감발에 새끼줄로 대 여섯 번 발을 돌려 엮은 것이 전부다. 보기에 민망하여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운동화라도 신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험한 산을 오르내려야 하고, 추운 곳에서 야영을 하기 일쑤였을 독립군들. 군인의 기본 장비인 군화가 저러할진댄 나머지를 더 논하여 무엇할까? 거기서, 100년 전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본다.
그때, 후줄근한 군복차림 속에서도 매섭게 빛나던 두 눈동자로 그들은 오늘의 우리를 보았을까? 그런 거룩하고 숭고한 충혼(忠魂)이 있었기에 오늘의 조국광복이 성취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상제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쉽게 역사의 섭리를 입에 담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역사의 섭리를 주재하시는 상제님이 동방의 조선 땅에 오셨음을 알지 못한다. 저 고난의 시대에 상제님이 우리 곁에 계셨다.
상제님께서는 오늘의 우리 민족에게 인류구원의 큰 사명(使命)을 내리시려고, 우리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공사(公事, 역사가 전개되어 가는 이정표·설계도)를 보시고 충혼들을 단련시키셨다. 때문에 과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막중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일꾼들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명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마디마디마다 역사전개의 이정표를 정해 놓으신 상제님의 숨결, 천지공사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상제님은 우주의 지존(至尊)이기 이전에 한국사람들과 아주 친밀한 분이다. 당신님은 우리 민족에게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크나큰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 조선 땅에 오셨다. 20세기가 시작된 1901년부터 9년 동안 이 땅에서 이 땅의 백성들과 호흡하시며 천지공사를 보셨다.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대한민국’ 국호(國號)도 상제님께서 친히 지어 주신 이름이다.
그전에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대(大) 자(字)’를 붙일 수 없었지 않은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세계가 일가(一家)되었을 때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도주국(道主國)이며, 종주국(宗主國)을 의미한다.
일본을 큰 일꾼으로 내세우다
상제님이 이 땅에 계시며 천지공사 보실 당시 조선의 형편은 어떠하였던가? 1904년부터 살펴본다 하여도, 러·일전쟁의 전장(戰場)으로 일본군이 인천에 상륙하는 것을 **로, 나라의 외교권을 넘겨준 강압적인 을사보호조약(1905년), 일제 통감부 설치(1906년), 1907년의 군대해산, 사법권·경찰권 이양으로, 사실상은 조선의 국권이 완전히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상제님께서 짜신 세운공사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전개된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일본을 일꾼으로 내세워 쓴다고 하셨다.
하루는 한 성도가 일본 사람을 ‘왜놈’이라 부르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일해 주러 온 사람들을 그렇게 험하게 말하면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하리오. 일 보는 사람이니 왜놈이라 부르지 말고 ‘일본 사람’이라 부르라. 일인(日人)은 일꾼이라. 나의 일을 하나니 큰 머슴이 될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5:22:4~6)
상제님께서 우리나라를 해방시키는 내용을 찾아보면, “일본은 깔담살이 머슴이요, 미국은 중머슴이요.”라는 말씀과 “깔담살이 머슴이 들어가면 중머슴이 나와서 일하고….” 하신 말씀이 있다 (道典 5:22:8 9).
상제님은 일본과 미국을 ‘머슴’이라고 부르셨다. 머슴은 주인(主人)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혹자는 어떻게 증산 상제님께서 우리나라를 외국에 의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만, 이는 당시 조선이 얼마나 무능력하고 부패할 대로 부패했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소치이다.
상제님은 아예 지도에서 영영 사라질 민족에게 생맥(生脈)을 붙이고, 금강역사(金剛力士)로 되살아나는 아주 특별한 시술을 행하셨다. 그리고 채 기운이 미흡하여 주인노릇을 하기 힘든 ‘어린 도령(道令)’이 힘이 붙을 때까지,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가 조선의 뒤를 돌보도록 ‘아주 특별한 기운’을 붙이셨다.
그러면 ‘깔담살이 머슴’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금은 쓰지 않는 ‘꼴머슴’의 사투리다. 사전에는 ‘땔나무나 꼴을 베는 일을 하는 어린 사내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자로만 보면, 아주 정감 넘치고 때론 겸연쩍은 표정의 구릿빛 얼굴이 다가온다. 그러나 과연 일제 치하가 그렇게 녹녹했던가?
일본 사람이 서방 백호 기운을 띠고 왔나니 숙호충비(宿虎衝鼻)하면 상해를 받느니라. 범은 건드리면 해를 끼치고 건드리지 않으면 해를 끼치지 않으며, 또 범이 새끼 친 곳은 그 부근 동리까지 보호하나니 사사로운 일로 그들을 너무 거스르지 말라.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 동방의 청룡(靑龍)기운이 동(動)하면 백호는 물러가느니라. (道典 5:285:5 8)
“중국으로부터 보은신이 넘어오리라”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조선은 완전히 해체되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 파멸을 맞이한 것이다. 그 형극의 상황에서 우국지사들의 충정(衷情)이 터져나왔으나, 일본의 압제가 워낙 심해 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을 일으킬 수 없었다. 까닭에 만주와 상해가 그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을 지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었다.
한편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막대한 영향을 끼치던 중국은 어떠하였는가? 1908년 10월 26일(음), 상제님께서 청나라 광서제(1871∼1908)에 응기(應氣)되어 있던 황극신(皇極神 : 세계역사를 움직이는 천자신)을 우리나라에 옮겨오는 천지공사를 보시자, 광서제는 죽고 만다. 광서제의 사인(死因)은 세간에서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로부터 중국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상제님께서는 그 달에 ‘한국과 중국’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대단히 중요한 ‘보은신 넘어오는 공사’를 보시고, 다음해(1909년)에 어천하신다. 사실 그 다음해부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총독부 시절이 시작된다.
순망즉치한(唇亡則齒寒)이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나니 중국 인민이 부흥하여야 우리도 이어서 부흥하게 되리라. 중국이 오랫동안 조선의 조공을 받아 왔으니 이 뒤로 25년 만이면 중국으로부터 보은신(報恩神)이 넘어오리라. (道典 5:322:17~18)
중국으로부터 보은신이 넘어온다는 이 말씀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공사를 집행하신 때는 1908년, 그로부터 약 25년 후의 시대상황을 살펴보자.
1931년 9월 18일 만주전쟁이 일어난다. 일본은 만주를 무력 침공하여 만주 전역을 손아귀에 넣었으나 중국은 힘이 부족하여 어찌할 수 없었다. 상제님이 공사로 집행하신 일·청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다음 말씀을 보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 하나의 귀결점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차 일청전쟁이 두 번 일어나리니 첫 번째에는 청국이 패하고 말 것이요, 두 번째 일어나는 싸움이 10년을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은 패하여 쫓겨 들어가고 호병(胡兵)이 침노하리라. 그러나 한강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 (道典 5:405:1~2)
1932년 1월 28일, 중국 침략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하여 일본군은 10만 병력과 100대의 비행기로 상해(上海)를 공격하여 점령해버린다. 중국은 중앙군인 제5군을 상해 방어에 투입하여 19로 군에 협동하여 총 30만 명이 1개월 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결국 일본군이 상해를 수중에 넣고 만다. 이것이 소위 상해사변이다.
이는 4억 중국 인민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립도 경각을 다투게 되었다. 만주는 독립군의 전투기지이며, 상해는 임시정부의 소재지 아닌가. 매달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궁핍한 재정 형편과 배고픈 일부 애국지사들의 이탈로 당시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보은신이 넘어온 계기? : 윤봉길 의거에 감동한 장제스
이 때 4억 중국인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백범 김구(1876∼1949)가 편성한 특공대 한인애국단의 윤봉길(1908∼1932)이 상해 점령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 상하이 일본인 거류민 단장 등 수뇌 7명을 모두 섬멸한 것이다. 이날은 일왕의 생일이었다.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1887∼1975) 총통은 이에 감동하여 각지를 순회하면서 “고려청년 윤봉길은 중국군 100만 명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었다” 하고 격찬하였다. 그동안 한국 독립운동에 대하여 별 호의를 보이지 않던 장제스는 그 이후 완전히 태도를 바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김구-장제스 비밀회동을 갖게 되었고, 백범의 한국 독립군 장교훈련 요청에 장제스는 쾌히 응낙하였다. 이에 중국군관학교 뤄양(洛陽)분교에 한국군 장교반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카이로 회담에서 유일하게 완전독립을 보장받은 한국
1943년 3월 27일 영국의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전후(戰後) 식민지 독립이 인도의 독립을 고취할 것을 우려하여 외교장관을 미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종전(終戰) 후 한국의 완전 독립을 승인하지 않고 신탁통치를 한다는 데 합의를 하였다. 이를 알게 된 백범과 임시정부는 경악하여 전 역량을 동원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최근 발견된 중국측 자료 ‘총재접견한국영수회담기요(總裁接見韓國領袖會談紀要)’에 의하면, 카이로회담을 앞두고 1943년 7월 26일 장제스는 백범의 요청에 의해 백범 등 한국 요인 6명을 비밀리에 공관으로 초빙했다. 이 자리에서 백범은 종전 후 한국의 완전 독립과 국제 공동 관리의 신탁통치 반대를 주장하며, 이를 중국 측에서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장제스는 “영국과 미국은 국제공동관리 논조를 확실히 갖고 있으므로, 장래 쟁집(爭執)이 반드시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내부의 정성 통일과 공작 표현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 측은 힘써 싸우겠다.”고 약속했다(필자주. 동아일보 2007. 6. 9. ‘신용하 교수의 다시 보는 한국역사’에서 인용).
1943년 11월 27일 미국 영국 중국의 연합국 수뇌들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태평양전쟁 종식 후, 일본에 대한 처리문제로 회담을 열었다. 이때 장제스의 제안으로 한국 독립의 약속이 선언서에 포함되었다. 원래는 미국에 의하여 미·영·중 삼국에 의한 신탁통치안이 발의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특히 영국의 처칠 수상은 식민지 인도의 독립을 고취할 것을 염려하여 한국 독립 문제의 논의 자체를 반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장제스의 기습 제안과 이에 반대하는 처칠을 루즈벨트가 중재하여 마침내 백범의 뜻이 관철된 것이다. 한국 독립의 시기에 대하여 처음에 루스벨트는 ‘적당한 때에(at the proper moment)’로 고쳤던 것을 처칠이 ‘적절한 과정에서(in due course)’라는 표현으로 재차 교정하여 카이로 선언에 채택되었다(홉킨스가 루즈벨트에게 제출한 정책 건의서에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로 되어 있었다).
⑤〈특별조항〉 한국의 미래에 대하여 언급하고 독립을 보장하는 국제적 합의를 하였다.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 아래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적절한 과정에 따라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줄 것이다.”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 - 카이로 선언의 내용 중에서
인도의 독립운동 지도자 네루(1889∼1964)는 왜 한국 독립만 보장되고 인도는 무시되었는가를 통탄하였다고 한다. 어찌 인도뿐이리오. 2차 대전 이후에 독립운동을 전개한 100여 식민지 국가 중 카이로 회담에서 독립을 보장받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런 시대상황으로 볼 때, 윤봉길 의사, 중국의 장제스 총통 그리고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주석 등이, 도전 5편 322장의 공사 말씀을 인사(人事)로 성사(成事)시켜, 중국으로부터 보은신을 조선으로 넘어오게 한 주요 인물들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회문산에서 보신 오선위기 진주(眞主) 공사
다시 상제님의 공사로 돌아가 보자. 카이로 선언의 결과를 연상케 하는 공사 내용이 1907년 가을 순창 회문산 아래 농바우에서 집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일본을 도와 잠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에 역사를 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만일 어질 인 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 자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리니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어질 인 자는 뺏기지 말라.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요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하시니라.
이어서 양지에 천하시비신순창운회(天下是非神淳昌運回)라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의 결정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약소민족도 조선과 같이 제 나라 일은 제가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77:6~13)
이 공사의 이름은 바로 ‘오선위기 진주공사’이다. 오선위기는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의 혈’로 순창 회문산에 있다. 다섯 신선이란 구체적으로는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과 같은 강대국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주(眞主)는 참 주인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어질 인(仁)자는 주인(主人)의 마음이다.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은 (천지의) 주인(主人)되는 동방의 조선이 대국의 칭호를 회복하고 당당히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과정인 것이다. 상제님의 천지공사가 아니고는 세계사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 품삯도 못 받고 가는 일꾼
이제 깔담살이 머슴이 물러가는 시기에 대한 내용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공사를 보신 때는 1906년 2월. 서울 남산에 통감부(왜성대)가 설치되고 이등통감이 부임한 그 시기다. 상제님께서 친히 서울 남대문에 왕림하셔서 중요한 공사를 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일본은 나의 일을 해 주고 품삯도 받지 못하고 가는 일꾼이니라. 세간에서 칠월 보름을 백중(百中)이라 하나니 백중백중(百中百中)이라 일백 가지 일이 모두 적중하리라. (道典 5:125:9~11)
위 말씀은 백중(百中)에 핵심내용이 다 들어있다. 백중은 도교(道敎) 절기로 보면 옥황상제님께 인간의 죄를 고하는 날(元) 가운데 중원(中元)이며, 불교 절기로는 목련존자가 지옥에 있는 자기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 제를 올렸던 우란분절이며, 우리 민속에서는 모내기를 마친 머슴을 하루 쉬게 해주는 ‘호미씻기날’ 등 여러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 상제님은 ‘머슴이 일손을 놓고 쉬게 하는’ 우리 민속 풍습을 공사정신으로 취하셨다. 곧 깔담살이 머슴이 그 임무를 다하게 될 것임을 풍류적으로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전통적으로 ‘호미씻기날’에는 두둑히 용돈을 줘서 보내지만 상제님의 머슴에게는 품삯을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그 선언의 장소로 어디를 선택하셨는가?
병오(丙午, 1906)년 상제님께서 경복궁 앞에 벽력표(霹靂表)를 묻으신 뒤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모두 흩어져 돌아가라. 10년 뒤에 다시 만나리라. 10년도 10년이요, 20년도 10년이요, 30년도 10년이니라.” 하시거늘 한 성도가 “40년은 10년이 아닙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40년도 10년이야 되지만 넘지는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5:132:1∼3)
이는 1945년 해방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머슴이 주인을 능멸하려 그 사랑채(경복궁) 바로 앞에 그보다 더 큰 집을 짓고 내려다보게 될 것을 내다보면서 상제님은 일본에게 정확히 40년(1906∼1945) 동안만의 조선 강점을 허락하고 계신다.
저 300년 전 임진왜란 때, 조선 전토를 유린하며 자신만만하던 저들. 그러나 끝내 통치를 해보지 못하여 큰 한(恨)을 안은 채 풀지 못하고 있다는 일본의 도술신명(道術神明)들에게 마치 대문(大門) 키를 내주는 것과 같은 해원 예식을 보고 계신다.
진정한 광복의 날은 언제인가
그러나 상제님이 강조하신 ‘백중백중’, ‘칠월보름’ 등은 ‘깔담살이 머슴’에게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상제님께서 ‘일제로부터 해방되는 날짜(七月七夕)’는 다른 공사를 통해서 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의 『도전』 5편 125장 말씀은 얼핏 해방공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공사는 단순히 ‘일본으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을유(乙酉, 1945) 광복(光復)은 상제님의 공사정신으로 보면 사실은 ‘꼴머슴’과 ‘중머슴’의 업무교대에 지나지 않는다.
백중백중은 그야말로 대명천하(大明天下)에 ‘주인(主人)’이 나서는 날이다. 꼴머슴이 일하다가 쉬는 날짜가 정해져 있듯, 중머슴 역시 천지에서 일하라고 허락해준 제한된 시간이 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천지공사에서 결정된 그대로 전개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육자회담도 바쁘고, 함께 뛰는 우리 도생(道生)들도 더욱 바쁘다. 백중 백중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상제님 말씀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천지법임을 새삼 느낀다.
'증산도 도전(道典) > [도전 탐구] 도전으로 보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강을 부르는 법칙 (0) | 2014.11.24 |
---|---|
세상을 바꿀 발명품 10가지 (0) | 2014.11.24 |
꿈의 나노기술, 신천지 열어간다 (0) | 2014.11.24 |
‘유전자 혁명’시대 성큼 (0) | 2014.11.24 |
칠성(七星)과 칠성경(七星經) (0) | 2014.11.24 |
만일 세상에서 나를 성인이라하면 (0) | 2014.11.24 |
천지의 사덕, 원형이정 (0) | 2014.11.24 |
천하의 난을 불러일으킨 갑오동학혁명 (0) | 2014.11.24 |
백년 전에 기획한 연금술의 기적 (0) | 2014.11.24 |
8 · 15 광복 60주년에 돌아보는 감동의 순간! (0) | 2014.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