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증산도 도전(道典)/[도전 탐구] 도전 속 인물56

왜 주회암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하셨는가? 왜 주회암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하셨는가? 주회암의 인물됨 상제님께서 “유가의 인물들이 흠이 많으나 주회암은 흠잡을 데가 없느니라.”(도전 4:14:3)고 평가를 하시고 유교의 진액을 거두기 위해서 주회암을 후천 유가의 종장으로 삼으셨다. 주회암(朱晦庵, 1130~1200). 주자(朱子). 남송시대 대유학자로서 북송 오현(五賢)의 학설을 계승, 종합하고 동시대의 불교, 도교 이론까지 섭렵하여 방대한 사상체계를 정립하였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주자는 덕망 있고 온후한 성인의 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시 주자의 친구이며 도학자인 장남헌이 주자에게 편지를 보내어 충고한 적이 있는데, “원회, 당신의 학문과 행동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바입니다만 눈앞의 사태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2014. 11. 17.
민족사학을 바로 세운 미수 허목 글·정형석(서울 강남도장) 허미수는 누구인가? 상제님께서는 천지공사를 보시면서 천하의 지령지기(至靈之氣)를 타고난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공사에 쓰셨습니다. 그 중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미수야, 우암을 잡아오너라.”는 말씀의 주인공인 미수 허목(許穆)입니다. 상제님께서는 그 많은 조선시대의 유학자들 중에 왜 하필이면 허목의 기운을 천지공사에 쓰셨을까요? 우리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에 대한 대립각으로 허미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상제님께서 허미수를 천지공사에 쓰신 깊은 이유가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허미수의 진면목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호는 미수(眉?), 이름은 목(1595∼1682: 선조 28년∼숙종 8년). 그는 조선시대 후.. 2014. 11. 17.
정관의 치라 불리우는 위징과 당태종 이찬병 포정/서울봉천도장 난세에 등장한 불세출의 영웅, 위징 중국 역사에 나오는 강직한 신하 중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위징”이란 신하가 있었다. 그는 유능한 황제 당나라 태종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위징(魏徵, 580∼643)은 당나라 초기의 공신, 학자로서 자는 현성(玄成),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다. 그는 중국 산동성 곡성에서 출생하였다. 수(隋)나라 말 혼란기에 이밀(李密)의 군대에 참가하였으나 곧 당 고조(唐高祖)에게 귀순하여 고조(高祖)의 장자 이건성(李建成)의 유력한 측근이 되었다. 황태자 건성이 아우 세민(世民: 후의 太宗)과의 경쟁에서 패하였으나 위징의 인격에 끌린 태종(太宗)의 부름을 받아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의 요직을 역임한 후 재상(宰相)으로 중용되었다. 특히 굽힐.. 2014. 11. 17.
대사공을 지낸 왕량 장군 윤창렬 왕량 장군은 A.D. 60년 28수에 맞추어 28장군의 초상을 배치할 때 4번째에 위치한 장군이다. 28수는 천구의 적도 둘레에 있는 밝은 별을 스물 여덟 별자리로 만들어 놓고 별의 위치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상제님께서도 이 28수(宿)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공사를 보신 내용이 있다. 하루는 유찬명(柳贊明)으로 하여금 두루마리에 ‘28수(宿)’자를 왼쪽으로부터 가로로 쓰게 하신 후에 끊어서 자로 재니 한 자가 되거늘 이에 불사르시니라. (道典 5:201:7∼8) 28수는 동서남북에 각각 7수씩 모두 합하여 28수가 되는데 이를 다시 한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28수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은허에서 나온 갑골복사(甲骨卜辭)와 상대(商代)의 금문(金文)에 이미 각(角), 방(房), 항(.. 2014. 11. 1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