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렬
왕량 장군은 A.D. 60년 28수에 맞추어 28장군의 초상을 배치할 때 4번째에 위치한 장군이다. 28수는 천구의 적도 둘레에 있는 밝은 별을 스물 여덟 별자리로 만들어 놓고 별의 위치를 나타내는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상제님께서도 이 28수(宿)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공사를 보신 내용이 있다.
하루는 유찬명(柳贊明)으로 하여금 두루마리에 ‘28수(宿)’자를 왼쪽으로부터 가로로 쓰게 하신 후에 끊어서 자로 재니 한 자가 되거늘 이에 불사르시니라. (道典 5:201:7∼8)
28수는 동서남북에 각각 7수씩 모두 합하여 28수가 되는데 이를 다시 한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28수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은허에서 나온 갑골복사(甲骨卜辭)와 상대(商代)의 금문(金文)에 이미 각(角), 방(房), 항(亢), 심(心), 정(井), 류(柳), 진(軫), 규(奎), 위(胃), 묘(昴), 자(?), 여(女), 허(虛) 등 28수 중에서 13수의 명칭이 나타나는데 추측헌데 당시에 28수가 다 전해내려 오고 있었지만, 단지 복사(卜辭)속에서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보다 앞서 서경의 요전(堯典)에 성조(星鳥), 성화(星火), 성허(星虛), 성묘(星昴) 등의 명칭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이번 호의 주제인 왕량장군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광무제를 도와 하북을 평정하고 야왕령이 되다
왕량(王梁)의 자(字)는 군엄(君嚴)이고 어양군(漁陽郡, 지금의 북경시 동쪽) 요양(要陽) 사람이다. 군(郡)의 관리로 있었는데 태수 팽총(彭寵)이 왕량으로 호노령(狐奴令, 호노는 지금 북경시의 순의현과 밀운현 사이에 있었다)을 삼았다. 그는 갑연(蓋延), 오한(吳漢)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가서 광무제를 광아(廣阿, 하북성 隆堯縣 동쪽)에서 만나 편장군(偏將軍)의 벼슬을 받았다. 한단(邯鄲)을 함락하고 나서는 관내후(關內侯)의 작위를 하사받았다. 종군하여 하북(河北) 지방을 평정하여 야왕령(野王令, 야왕은 하남성 沁陽縣 지역)이 되었고, 하내군(河內郡) 태수 구순(寇恂)과 함께 남쪽으로는 낙양(洛陽)을 방비하고 북쪽으로는 천정관(天井關, 산서성 晋城市 남쪽 태항산 정상에 있다. 관의 남쪽에 天井泉 세 곳이 있음으로 인하여 이러한 명칭이 생겼다)을 수비하니 주유 등이 감히 군사를 내지 못하거늘 세조(世祖, 광무제)는 이를 왕량의 공이라고 인정하였다.
광무제가 등극 후 대사공의 벼슬을 받다
세조 광무제가 등극한 뒤에는 의논을 거쳐 대사공(大司空)의 벼슬을 제수 받았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는데 적복부(赤伏符)에 “왕량주위작현무王梁主衛作玄武”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무제는 야왕(野王)은 위(衛)나라가 옮겨간 곳이고(衛元君 때 陽으로부터 野王으로 옮겨갔다) 현무(玄武)는 수신(水神)의 이름이고 사공(司空)은 수토(水土)를 관장하는 벼슬이라고 생각하여 왕량을 발탁하여 대사공(大司空)의 벼슬을 내리고 무강후(武强侯)를 봉하였던 것이다. 이어서 당시에 유행하던 비결서인 적복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적복부(赤伏符)의 예언에 따라 광무제, 천자에 등극하다
광무제가 하북지방을 거의 평정하자 모든 장수들이 천자에 등극하기를 여러 번 요청하였다. 그러나 유수는 그때마다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 마침 유수와 동문수학했던 유생(儒生) 강화(彊華)라는 사람이 관중(關中)으로부터 적복부(赤伏符)라는 비결서를 가지고 유수를 만나 보았다. 원래 부(符)라는 말은 미래의 일을 예언하여 기록한 미래기(未來記)이고 적복(赤伏)이 이 미래기의 이름이다. 한나라는 불(火)을 숭상했고 적색(赤色)은 불의 색깔이며 복(伏)이라는 말은 감추고 있다는 뜻이므로, 적복부는 화덕(火德)으로 일어난 유씨(劉氏)의 한나라가 다시 부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유수발병포부도(劉秀發兵捕不道)하니 사이운집용투야(四夷雲集龍鬪野)로다 사칠지제화위주(四七之際火爲主)라’고 하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유수가 군사를 내어서 무도한 사람을 잡으니 뭇 영웅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판에서 싸움을 하도다. 사칠의 때에 화덕(火德)을 가진 사람이 천하의 주인이 된다”라는 뜻이다. 사칠은 곱하면 28이 되는데 이는 세 가지의 경우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한 고조 유방이 나라를 건국한 B.C. 206년부터 광무제 유수가 처음으로 군사를 일으킨 A.D. 22년까지가 도합 228년이 되어 사칠지제(四七之際)가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광무제가 28세 때 군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사칠지제가 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28명의 장수가 또한 사칠지수(四七之數)에 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언도 있고, 여러 신하들이 거듭 천자에 등극하기를 요청하자 유수는 A.D. 25년 6월에 호남(?南)의 천추정(千秋亭)에서 단을 쌓고 천자에 등극하였다.
황제의 명을 어겨 죽음에 직면했다 사면을 받다
건무(建武) 2년(A.D. 26)에 대사마(大司馬) 오한(吳漢) 등과 함께 단향적(檀鄕賊)을 칠 때 황제가 명을 내려 군사를 대사마에게 배속시켰다. 이때 왕량은 별도로 야왕의 군사를 징발하자 황제는 조칙을 받들지 않았다고 하여 그로 하여금 현(縣)에 머무르고 진군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왕량은 다시 자기 편리한 데로 진군을 하였다. 황제는 왕량이 거듭 명령을 어기자 대노(大怒)하여 상서(尙書) 종광(宗廣)을 파견하여 부절(符節)을 가지고 군중(軍中)에 가서 왕량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러나 중광이 차마 목을 베지 못하고 함거(檻車)에 실어 서울(당시의 서울은 낙양이었다)로 압송하였는데 서울에 도착하자 황제는 그를 사면하였다.
적미와 오교적을 깨트리고 전장군에 임명되다
한 달쯤 지나서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집금오(執金吾)의 일을 행하였다. 북쪽으로는 기관(箕關, 하남성 濟源縣 王屋山 남쪽)을 수비하면서 적미(赤眉)의 군사를 쳐서 항복을 받았다. 3년(A.D. 27년) 봄에 오교적(五校賊)을 공격하여 신도(信都, 治所는 지금의 하북성 冀縣), 조국(趙國, 治所는 지금의 한단시)까지 추격하여 격파하고, 모든 근거지를 다 평정하였다. 황제는 겨울에 사자(使者)에게 칙령을 내려 왕량을 전장군(前將軍)에 임명하였다.
전쟁할 때마다 더욱 공을 세워 산양태수가 되다
4년(A.D. 28년) 봄에 비성(肥城, 지금의 산동성 肥城縣) 문양(文陽)을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더 진군하여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 두무(杜茂)와 함께 교강적(퍏彊賊), 소무적(蘇茂賊)을 초(楚), 패(沛)의 사이에서 공격하여 대량(大梁, 지금의 하남 開封市 西北), 설상(齧桑)을 함락하고 포로장군(捕虜將軍) 마무(馬武), 편장군(偏將軍) 왕패(王覇)와 함께 또한 길을 나누어 함께 진군하여 1년여만에 다 평정하였다. 5년(A.D. 29년)에 도성(桃城)을 구원하였고 방맹(龐萌) 등을 격파할 때 왕량은 전쟁에 더욱 힘을 기울여 산양(山陽, 지금의 하남성 焦作市 동쪽) 태수에 임명되어 새로 거느린 사람들을 진무(鎭撫)하였고, 군사를 거느리기는 이전과 같이 하였다.
수로를 뚫었으나 실패하자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다
수개월만에 불려 들어가 구양흡(歐陽?)을 대신하여 하남윤(河南尹)이 되었다. 왕량은 물길을 뚫어 곡수(穀水)를 이끌어 낙양성 아래로 흘려보내 동쪽으로 공천(鞏川)으로 흐르게 했으나 물길이 완성되었어도 물이 흐르지 않았다.
7년(A.D 31년)에 관리가 탄핵하는 글을 황제에게 상주하자 왕량은 부끄럽고 두려워하여 글을 올려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했다. 황제가 조칙을 내려 이르기를,
“왕량은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征伐)에 종사하여 뭇 사람들이 훌륭함을 칭찬하였기 때문에 발탁하여 경사(京師)를 다스리게 하였다. 수로(水路)를 개통하기를 건의한 것은 사람들의 이익을 도모한 것이나 뭇 사람들의 힘을 들였지만 공을 이루지 못하여 백성들이 원망하고 이를 시끄럽게 말하는 자가 많도다. 비록 너그럽게 용서함을 받았으나 오히려 겸손하게 물러나기를 고집하는 도다. 『논어』에 이르기를 군자는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준다(君子成人之美)고 하였으니 왕량으로 제남태수(濟南太守)로 삼노라”고 하였다. 13년(A.D. 37년)에 읍(邑)을 더해주고 부성후(阜成侯)에 봉하였다. 14년(A.D. 38년)에 관직에 있으면서 졸(卒)하였다.
왕량이 주관하는 별은 동방의 창룡칠수 중에서 네 번째 별인 방수(房宿)에 해당한다. 방수는 창룡의 배에 해당하며 네 개의 주홍색 별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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